2005년 10월 17일
구체적 사례를 통해 본 진화의학의 가능성
2005년 10월 <과학과 철학>지, (hwp)

글이 길어서 본문을 제외합니다. 논문을 다운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글길이 제한은 참으로 안좋은 시스템이군요.

일반논문

구체적 사례를 통해 본 진화의학의 가능성

김 우 재(포항공대 생명과학과)

진화적 사고는 인간의 건강과 질병을 이해하는 데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진화의학(다윈의학)조지 윌리암스(George Williams)와 랜돌프 네스(Randolf Nesse)에 의해 다윈의학(Darwinian medicine)이라고 명명된 이 분야의 명칭은 최근 진화의학(Evolutionasry medicine)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므로 이 논문에서는 진화의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은 인간이 질병에 걸리는 이유에 관한 진화론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을 가장 큰 목적으로 삼는 새로운 의학의 분야이다.Williams GC & Nesse RM(1991).
현대의학의 미스테리 가운데 하나는 정교한 기계처럼 작동하는 인간의 몸이 대부분의 질병을 유발하는 실패의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의학은 이 미스테리에 답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자연선택은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제거하지 않고 남겨두었을까?, 왜 자연선택은 고장난 몸을 완벽하게 복구하는 유전형질을 선택하지 않았을까?”Nesse, RM & Williams, GC(1994).



Ⅰ. 진화론의 확장과 현대진화론

집단유전학과 결합한 진화생물학은 근대종합(modern synthesis)을 통해 세련된 형태의 독자적 학문체계를 이루었다. 그러나 진화론이 진화생물학이라는 학문에 국한되어 연구되어온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는 종이 진화라는 역사의 산물이라면 인간이 연관되는 그 어떠한 학문도 진화론의 틀에서 크게 자유롭지는 못하다. 충분한 증거가 확보된다면 결국 인간을 다루는 모든 학문은 진화론적 패러다임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20세기의 후반에 심리학에 진화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심리학은 새로운 토대 위에 기초될 것이다”라고 예언한지 100년이 훨씬 지나서야 심리학에도 진화론의 적용이 시작되었다. 소위 진화심리학은 인지심리학과 진화생물학의 융합으로 구축된 학문분야이다. 경제 현상을 생물학적으로 해석하는 생물경제학(biological economy)에서도 진화론의 비중은 매우 크다. 철학의 경우, 인지 과정 그리고 도덕성의 기원을 생물 진화과정 속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오래되었다.
이처럼 진화론적 사고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의학은 예외였다. 왜 진화론은 윤리학이라는 철옹성을 넘나들면서도 의학이라는 분야, 생물학과 가장 밀접한 관계 속에 있는 분야에는 깊게 침투하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진화의학을 논하는 장의 결론 부분에서 다룬다. 우선 현대진화론의 기본적인 개념들을 조망하고 진화의학이라는 개념을 살펴본 후 진화론이 의학에 필요한 것인지, 왜 의학은 진화론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것인지에 관해 논한다.
생물학에서 뉴턴에 버금가는 과학자 한명을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하지 않고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을 지목할 것이다. 다윈이 발견한 것은 우리가 유구한 역사, 진화라는 생명체의 서사시속에서 다듬어져 온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다윈이후 계속되어온 진화론을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유전형질의 변이가 무작위적으로 나타나고, 각 형질을 가진 개체의 생존은 그 개체가 주어진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했는지를 나타내는 번식도에 의해 결정되며, 이러한 선택과정을 자연선택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자연선택과정이 반복되면 좀더 많은 개체를 생산할 수 있는 유전형질은 선택되고 유전자풀에서 급속히 퍼져나간다.
진화의학을 설명하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현대진화론의 중심개념은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다. 다윈의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조지 윌리암스는 집단선택론(group selection theory)을 공격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1966년 「적응과 자연선택(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이라는 책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 책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작업은 윌리암스 혁명(Willams revolution)으로도 불리며 자연선택의 단위를 유전자로 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윌리암 해밀턴(William Hamilton), 존 메이나드 스미스(John Maynard Smith),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 그리고 리쳐드 도킨스(Richard Dawkins) 등이 함께 이루어 낸 것이다. 윌리암스 자신이 유전자 선택설(gene selection theory)의 주창자 중 한명이기 때문에 네스와의 기념비적인 저작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또한 철저하게 유전자 선택설에 근거해 쓰여 있다.
자연선택의 단위를 유전자로 보는 관점은 어떻게 집단 결속력이 가능한가라는 난제를 발생시켰다. 이러한 난제는 혈연선택 이론(kin selection theory)을 자극했다. 이타적 행동은 후에 보상을 가져옴으로써 친족 집단 유지에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현대 진화생물학의 주류 연구방법론 중 하나인 적응주의 프로그램은 선택의 단위를 친족 범위에 국한시킨 상태에서 생명체의 유전 형질과 여러 행동 성향을 다룬다. 적응주의 자체에도 많은 논쟁이 있지만 윌리암스가 적응주의의 창시자격인 인물이고 따라서 진화의학이 주로 기반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적응주의이다. 적응주의 프로그램은 목적론적 프로그램을 가정하지 않는다. 즉 진화에 어떤 방향성을 설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땜질이론’이라고 부르겠다. 자동차에 흠집이 생기면 그 흠집 때문에 자동차를 새로 사는 것보다는 페인트로 땜질을 하는 것이 이득이다. 진화란 이렇듯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맞추어 자동차를 땜질하고 수리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조지 윌리암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화의 역사에는 오직 시행착오에 따른 서툰 만지작거림이 있을 뿐이다.” 진화에 정해진 목적이 없다는 것은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이라는 말로 더 유명하다. 도킨스는 진화의 땜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물학은 겉으로는 목적을 가지고서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복잡한 것들에 대한 연구이다. (중략) 자연 선택은 눈먼 시계공이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자연선택이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결과들을 계획하지 않고 목적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자연선택의 결과물들은 마치 유능한 시계공에 의해 설계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압도적으로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가 설계와 계획이라는 환상을 갖도록 만든다.도킨스(1994).


진화란 앞을 내다보지 못하며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수선해 온 역사이다. 따라서 생존을 위해 땜질은 반드시 경제학적 효용원칙을 고려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말을 할 수 있는 발성기관을 가지게 되었지만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진화의학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인 진화론적 지식을 살펴보았으니 이제 구체적인 사례들로서의 진화의학을 다룬다.


3. 진화의학이 제시하는 결론
진화의학이 제시하는 질병에 대한 결론은 다시 서론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지금까지 돌아 본 질병의 원인들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인간을 질병에 걸리기 쉽도록 만드는 유전자들이 존재한다. 미미한 비율이지만 돌연변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생겨나는 결함들 중에는 자연선택에 의해 드물게나마 살아남 것이 있다. 즉 어떤 유전자들은 적응도에 영향을 끼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에 나타나기 때문에 제거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예로 헌팅턴병 Huntington's disease이 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40대가 될 때까지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하다가 갑자기 기억이 희미해지고 근육 경련을 일으키며 신경세포들이 붕괴되지만 결혼 적령기를 상당히 지난 40대까지 그 증상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이미 자식에게 전파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분히 파괴적인 대부분의 유전적 결함들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손실을 능가하는 이득이 있기 때문에 자연선택에 의해 유지되기도 한다. 이들 중 어떤 것은 이형접합자가 갖는 이득 때문에 유지되는데, 겸상적혈구증이 한 예가 된다. 이 유전자의 이형접합자들은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성 때문에 개체에 유리하다. 반대로 정상 동형접합자는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성이 없어 생존율이 낮고, 겸상적혈구를 나타내는 유전자의 동형접합자는 이 질병 때문에 생존율이 낮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선택압들 간의 상대적인 강도에 따라 이 형질의 빈도가 결정된다. 또 다른 것들은 사람에게는 불이익을 주지만 자기 자신의 빈도를 높이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유지되며 무법유전자 Outlaw gene이 좋은 예이다. 유전적 급변이라는 개념도 등장하는 데, 이는 새로운 환경 요인과 반응할 때만 나쁜 영향을 나타내는 유전자의 표현형을 의미한다. 알코올 중독이나 실독증, 근시 등이 좋은 예가 된다.
둘째,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환경 요인에 노출된 결과로 나타나는 질병이 있다. 인류가 수백만 년간 아프리카에서의 캠핑생활을 마치고 문명의 역사에 적응한 것은 수 천년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몸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 진화의 큰 흐름에서 수천년이란 미미한 시간이다. 고고학적 시간은 굴드의 말처럼 진정 ‘깊은 시간’이다. 빈번한 교류, 교통의 발달로 전염성이 좋은 전염병들이 창궐하고 지방과다 등의 영양섭취 과잉으로 인한 비만과 심장질환이 이러한 질병의 예가 된다. 다음과 같은 추측이 가능하다. 석기시대에는 영양결핍이 많았을 것이고, 당분이나 소금 등에 항상 허덕였을 것이다. 따라서 지방이나 당분을 비축할 수 있게 만드는, 즉 이러한 음식물을 선호하게 만드는 유전자가 생존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식탁은 풍요롭고 그런 유전자는 이제 우리를 비만과 심장질환으로 만든다.
셋째, 인간의 설계상의 절충에 의해 생기는 질병이 있다. 인간이 직립보행을 한 것은 어쩌면 하나의 타협이다. 직립보행을 함으로써 인간은 두 손의 자유를 얻었지만 그 결과로 우리는 척추 관련 질병들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의 척추와 골반은 직립보행을 하기에 완벽한 구조는 아니다. 현대진화론을 설명하며 언급했던 경제의 효용성 원리가 이곳에서도 적용된다.
넷째, 인간만이 자연선택에 적응하여 스스로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종은 아니다. 병원체와 우리는 끊임없는 군비경쟁을 하고 있다. 이런 경쟁에서 항상 우리가 승리할 수는 없다. 병원체들은 짧은 세대교체로 인간보다 빠른 진화적 적응을 얻을 수 있고, 보다 다양한 변이를 생산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불운한 역사적 유산 때문에 생겨난 질병들이 있다. 만일 생물체가 늘 커다란 변화를 통해 새롭게 설계될 수 있다면 많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좋은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인간의 신체는 모든 세대에서 제대로 기능해야 하며 결코 이전으로 되돌아가거나 완전히 새로 시작할 수는 없다.

Ⅱ. 구체적 사례로서의 진화의학

결국 진화의 관점을 떠나서는 의학의 어떤 것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윌리암스 & 네스Nesse, RM & Williams, GC(1994).


1. 진화의학이란 무엇인가
윌리암스와 네스의 시도가 있기 전에 진화의학에 대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윌리암스 스스로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듯이 1980년 「이론생물학 저널」에 실린 폴 에왈드(Paul Ewald)의 ‘진화생물학, 그리고 감염성 질환의 증세와 증상에 대한 치료’라는 선구적인 노력이 있었고,Ewald PW(1980).
1987년에는 르네 듀보(Rene Dubos)의 「적응하는 인간(Man Adapting)」이라는 저서가 출판되기도 했다.듀보(1987).
감염성 질환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하는 에왈드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백신이나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병원균들을 과거에 그들이 살아온 것보다 덜 해롭게 만들 수 있다”Hooper J(1995).
라고 말함으로서 감염성 질환에 대한 진화적 사고를 강조했다. 사실 감염성 질병을 연구하는 전염병학의 분야는 기생생물과의 군비경쟁이 알려지기 이전부터 진화론의 패러다임이 자리하고 있었다. 홀데인은 전염병이 최근까지 인간 진화에 영향을 미친 요인 중의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고 했다. 윌리암스와 네스는 이러한 산발적인 작업들을 이론적으로 종합하고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상수도의 발전과 항생제의 발명 등으로 인해 인류가 겪는 질병의 종류가 감염성 질병에서 만성 질병으로 변화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Eaton SB, et al.(2002).
즉, 질병에 국한해 보았을 때 우리의 조상들의 주요 사망원인이 미생물이나 바이러스 감염이었다면, 현대인들은 알츠하이머나 심장병, 암으로 인해 사망한다는 것이다. 진화의학은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 전제를 제시한다. 첫째, 우리의 유전자풀(gene pool)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연선택에 의해 다듬어진 결과이다. 둘째, 농업이 시작된 이래로 인간의 유전자풀에 약간의 변형이 있었을지라도 자연선택의 속도는 매우 느리기 때문에 우리의 게놈이 적응한 환경은 홍적세일 것이다. 셋째, 현대인의 생활방식과 우리조상들의 생활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불일치로 인해 만성질병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진화의학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의 범주를 제공한다. 진화의학 프로그램이 다루는 범위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1) 방어: 방어는 사실 질병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질병과 혼동되어 다루어진다. 기침은 호흡 경로에 침입한 외부 물질을 몸 밖으로 쫓아내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복잡한 작용의 결과이다. 반면 폐렴환자에게서 보이는 적혈구의 청색화 현상은 방어기능이 아니라 우발적인 사건이다. 방어와 손상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2) 감염: 인간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의 몸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집이다. 우리는 그들과 수백만 년 동안 군비경쟁을 해 왔으며 현재도 끊임없이 전쟁 중이다.
(3) 새로운 환경: 우리는 아프리카에서의 캠핑생활에 적응된 몸을 가지고 태어난다. 겨우 수천 년 동안에 이루어진 문명에 적응할 시간이 우리에게는 충분하지 않았고 이러한 부적응이 질병을 야기하기도 한다.
(4) 유전자: 우리의 유전자들 중 일부는 질병의 원인이 됨에도 불구하고 제거되지 않았다. 어떤 유전자들은 젊은 시절에 큰 이익을 주기 때문에 노년에 큰 질병을 가져오기도 하고, 어떤 유전자는 과거에는 전혀 해롭지 않다가 새로운 환경을 만날 때에만 질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무법자 유전자(outlaw genes)는 개체의 이익에 상관없이 자신의 복제만을 신경 쓰기도 한다.
(5) 설계상의 절충: 전반적으로 이로운 유전자들에게도 손실이 따르는 것처럼 자연선택에 의해 보존된 중요한 구조적 변화들에도 그에 따른 대가가 있다. 직립보행은 두 손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었지만 척추질환을 가져오기도 했다.
(6) 진화적 유산: 기관지 앞으로 나 있는 식도는 우리가 우리의 물고기 선조들로부터 받은 진화적 유산이다. 우리는 자동차를 새로 사는 것보다 땜질을 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다. 이러한 유산들은 경제적 고려로 인해 우리가 짊어진 일종의 업보다.

의학이 생물학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실제 현장에서 환자들에게 적용된다는 점일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진화의학이 기대고 있는 진화론적 기본 틀과 기본 전제들, 그리고 범주들을 근거로 실제 진화의학이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에 관해 살펴본다.윌리암스와 네스가 그들의 저서를 출간한 이후 진화의학에도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이곳에서 다루는 구체적 사례들은 이미 국내에 소개된 그들의 저서 이후 이루어진 최근의 발전에 초점을 맞춘다. 진화론적 건강 증진(Evolutionary health promotion)이라는 최근의 논문에서 공동저자들은 과거처럼 모든 의학적 분야에 대한 설명보다는 특정한 몇 가지의 주제들에 집중하는 측면을 보여준다. 그 주제들은 영양학적 고려(nutrition), 격렬한 육체활동(physical exertion), 생식(reproduction), 감염(infection), 성장과 발육(growth and development), 정신사회학적 요인(psychosocial factors)이다. 이러한 주제들 중 구체적인 사례로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한다고 제시되는 것들로는 임신률과 태아의 몸무게, 유방암, 신경계의 발달, 제2형 당뇨병, 혈장 콜레스테롤 수치 등이 있다.

Ⅲ. 진화의학의 미래

이제 뒤로 미루어 놓았던 한 가지 질문에 답을 해야 할 차례다. 다윈의 이론이 체계적으로 질병에 적용될 때까지 왜 백 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의학이 진화적 사고에 저항하는 이유를 의학 그 자체의 특징과 의사라는 학문의 실행자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여기서는 의학의 학문적 특징으로 인한 이유만을 제시할 것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진화론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는 종교적 성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의사 개개인의 종교적 출신으로 인해 진화론이 거부되는 것은 불운한 일이지만 이 논문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다.Downie JR(2004) 최근 영국 의학대학원을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7%의 학교만이 의과대학의 커리큘럼에 진화론을 포함하고 있었다. 10%의 학생이 종분화를 포함하는 장기진화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들의 대부분이 종내의 변이를 설명하는 자연선택은 믿는다고 답변했다. 이러한 학생들의 대다수가 종교적 믿음 때문에 진화론을 거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주지해야 할 것은 영국은 상당히 세속화된 나라 중의 하나이고 또한 다윈의 조국이라는 점이다.

윌리암스와 네스는 이러한 의학의 저항에 대해 세 가지의 답변을 제시한다. 첫째, 질병에 대한 진화적 가설을 수립하고 이를 검증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질문은 쉽지만 검증은 정밀함을 요한다. 둘째, 진화생물학이 최근에 이르러서야 발달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책임은 의사들이 아니라 진화생물학자들에게 있다. 진화학자들은 지나치게 현학적인 질문들에 시간을 낭비해 왔는지도 모른다. 셋째, 의학 분야에 존재하는 독특한 성향이 진화의학의 적용을 막았을 수 있다. 자연선택에 대한 반감, 의학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실험방법에 한 특유의 강령, 생기설에 대한 부정으로 인한 부작용등이 그것이다. 오랫동안 의학은 생기론을 물리치려고 노력해왔는데, 이런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의학자들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오류투성이인 합목적주의(teleology) 역시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물학의 기능적 설명은 미래가 현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지만 번식과 자연선택의 연장선상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의학은 합목적주의의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고 하다가 도리어 현대 진화학이 이루어 놓은 확고한 진보의 이득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의학의 특징에 진화론을 거부하는 요소가 있는지는 연구해볼 만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주제다. 전통적으로 생물학과 관련된 학문 분야에는 두 가지 종류의 질문이 존재한다. 이를 근접인과 궁극인으로 구분한다. 의학은 근접인, 즉 생리학적 질문에 답하는 학문이고, 진화학은 궁극인, 즉 진화론적 질문에 답하는 학문으로 존속해 왔다. 따라서 진화학은 역사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는 분야이다. 역사적 성격의 과학은 실험실에서 검증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직접 환자에 적용해야만 하는 강박감을 가지는 의사들의 경우, 검증이 어려운 진화론적 해결책을 바로 현장에서 시술한다는 것은 위험한 도박일 수 있다.근접인을 가장 치밀하게 다루는 비역사적 학문분과인 분자생물학의 패러다임이 의학 속으로 자연스럽게 수용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측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따라서 진화의학을 주장하는 과학자들과 의사들도 의학의 패러다임을 바꾸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단지 고려해달라고 주장할 뿐이다. 이러한 고려가 현장에서 적용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Harris EE & Malyango AA(2005).
우선 의학대학원에 진화론을 포함한 커리큘럼이 포섭되고 예방의학과 전염병학을 중심으로 진화의학의 해결책들이 테스트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임상의학 분야에 대한 적용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진화의학이 많은 진화학자들과 생물학자들, 그리고 일부 의사들에게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반론은 종교적 기저를 가진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 진화의학이 제기하는 전제들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는 몇 가지 의견이 존재한다. 첫째, 과거 우리 조상들이 살던 환경이 정말 건강에 도움이 된다면 도대체 왜 현대인이 수렵채취인보다 더 오래 사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은 이미 진화의학에서 어느 정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지금처럼 증가할 수 있었던 것은 개개인의 생활양식에 있어 현대인의 것이 더욱 적합하기 때문이 아니라, 상하수도의 분리나 항생제의 개발 등과 같은 공공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따라서 현대인의 수명이 증가했다는 것이 진화론적 사고의 효용성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둘째, 신석기 농업혁명 이후로 인류의 유전형질이 현대의 환경에 적응되었으므로, 즉 농업혁명 이후에 매우 빠른 속도로 자연선택이 인류에게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우리의 몸이 홍적세에 적응되어 있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반론이다. 하지만 최근의 유전학적 성과들과 진화의 속도에 관한 최근의 연구들, 인종간의 차이에 관한 집단유전학적 성과들은 신석기 농업혁명이 인류의 유전자풀에 가한 변화가 미미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셋째, 진화적 환경적소(EEA)가 만약 매우 다양했다면 진화의학이 제공하는 설명력은 매우 약해질 수 있다는 반론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EEA의 다양성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그 공통점이 더 크기 때문에 무시될 수 있다. 넷째, 인간의 적응능력이 타종에 비해 매우 우월하므로 변화한 현대환경에도 인간은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적응능력이 정말 우월하다고 해도 생물종은 자신이 적응했던 그 환경에서 더욱 건강한 삶을 영위한다. 즉 생물종의 유전체가 선택된 그 환경이 건강에도 유리한 환경이라는 점이 자명하므로 인간의 적응적 우월성은 건강을 고려한다면 반론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Eaton SB, Cordain L, Lindeberg S(2002).

이러한 반론들에 대해 진화의학은 모두 답변할 준비가 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반론들은 역사과학으로서의 진화론을 실천적 학문인 의학에 적용시키기 위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중요한 질문들이다. 따라서 진화론적 사고는 다양한 방식으로 검증되어야 하고 반박가능하다면 그렇게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처럼 증거에 기인한 합당한 반박이 아니라 개인의 신념에 근거해서 증거를 무시하는 반박의 경우 오히려 의학의 발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할 수도 있음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by 취어생 | 2005/10/17 05:36 | 발표된 글들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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