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1일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에 대한 무식한 고찰
2005년 1월 7일, 생명윤리학회의 인간들은 죄다 이념의 포로들이다.

원제는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 브릭 리뷰에 올라온 나름대로는 논문이다. 간만에 브릭에 들러 글을 읽다가 이따위 황당한 글이 다 올라와 있다니, 게다가 이따위 글을 쓰고 돈을 받아쳐먹었을 생각을 하니 열받아서 이 저자의 무식함을 폭로하려 한다.

일단 저자는 서문을 이따위로 시작한다.

"특히 생명윤리에 관한 가톨릭의 가르침에서 볼 때 법률은 매우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도대체 생명윤리가 카톨릭의 가르침에 위배되던 아니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카톨릭의 가르침에 의해 제정된 생명윤리법률이 현재의 법률보다 더 상식적이고 적합하다는 것을 보장해 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럴 때 보통 우리는 역사적 접근을 시도하는 데, 역사적으로 카톨릭은 윤리에 관해 전혀 할말이 없다.

또한 저자는 법률의 목적이 생명과학의 육성을 위한 것인지 생명윤리를 위해 기술을 제한하는 것인지가 모호하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생명 윤리 및 안전의 확보와 생명과학기술을 개발·이용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동시에 법률의 목적으로 삼음으로써, 이 법률이 생명윤리를 확보하지 위한 법률인지, 아니면 생명과학기술 연구를 위한 법률인지가 불분명하다.
따라서 법률의 목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은 그 이름에 걸맞게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생명과학분야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무분별한 연구와 실험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이어야 한다. 즉 이 법률은 기본적으로 '생명윤리 및 안전을 확보'하는 법률이어야 한다. "


그러나 한가지 착각하고 있는 것은 복제연구자들을 위한 법률이 없다는 것이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저자의 말처럼 윤리와 제한을 위해서만 제정되어야 한다면 나는 제안한다. 복제연구자들을 위한 법률을 따로 제정하라. 이미 전세계적으로 복제기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논쟁과 자문위원회와 법률은 생명윤리와 연구육성방안을 함께 다루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 두문제는 결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분리시켜 이해하려고 하는 저자의 의도는 복제에 대한 윤리 및 제한을 위주로 법률을 제정하여 자신이 원하는 거의 모든 연구에 대한 금지를 전면에 내세우려는 가소로운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제 저자의 무식함을 폭로한다. 저자는 이종간 핵이식을 반대하면서 다음과 같은 치졸한 논거를 내세운다.

"왜냐하면 이종간 착상은 새로운 종의 인위적 창출을 가져와 생태계를 교란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종간 착상은 새로운 종의 인위적 창출을 가져올 수 없다.

1. 이종간 핵이식으로 복제된 배아가 착상되어 태어나더라도 이런 개체는 불임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가 라이거니 타이온이니 하는 말만 들어봤어도 이종간의 교배로 인한 (그것도 저자가 반대하는 경우가 아닌 매우 자연스러운 교잡에 의한) 출산이 개체수 증가로 이어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2. 게다가 이러한 개체들이 생태계를 교란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임신을 할 수 있다해도 육종에 의해 변형된 가축들이 생태계를 교란시키지는 못하듯이 이종간 개체들도 생태계를 교란시키지는 못한다. 나는 오골계가 생태계를 교란시킬 것이라고 걱정하는 이를 본적이 없다. 차라리 애완고양이들에 의한 생태계 교란을 걱정하라. 나는 생명윤리학회가 차라리 이러한 일에 앞장서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생명윤리학회의 무식한 학자들은 이종간 교배에 의한 동물에 대해서는 '비자연적'이라는 이유로 무한한 혐오감을 가지고, 고양이에 대해서는 '자연적'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산새들을 죽임으로서 생태계를 고착상태에 밀어넣는 이들을 잡아죽이는 것에 반대한다. 나는 말한다. 애완고양이는 복제연구보다 생태계를 고려할 경우 훨씬 위험한 존재라고. 아직 표면에 드러나지도 않은 이종간 교배에 의한 생태계 교란이라는 SF소설을 쓸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고양이나 잡아라.

3. 만약 이러한 이종간 교배에 의해 생태계가 교란된다면 저자는 동물원에서 라이거나 타이온을 출산시킬 때 이런 논문을 쓴 적이 있는가? 없다면 왜 그런 것인가? 그건 이종간 이식은 아니기 때문인가? 이런 상식적인 유추도 못하면서 생명과학에 대한 윤리적 자문을 한다고 깝치지 마라.

생명의 연속성을 논의하면서 저자는 수정이후 배아에 대한 인간권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조항은 삭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배아는 수정과 동시에 하나의 완전한 인간 생명이며 따라서 인간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배아 대상 연구는 허용될 수 없다. [1] 원시선의 출현이 배아가 인간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경계선일 수 없으며, 인간 생명은 원시선 출현 이전에 이미 존재한다. 수정 이후부터 진행되는 인간 생명의 발생 과정은 연속적인 과정이며, 수정 이후에는 결코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명확한 단절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2세기 법학자 테르툴리아누스는 "인간이 될 자는 이미 인간이다."(Homo est qui est futurus)라고 말하였다."

2세기 법학자의 말이 쌩뚱맞게 왜 등장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건 그때그때 다르니 그렇다고 치자. 다만 수정이후부터 인간의 생명을 완전한 것으로 본다면 그래서 연구조차 허용될 수 없다면 버려지는 배아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그 배아들을 어디 무덤에라도 묻어줘야 되는 것일까? 버려지는 배아들을 가지고 행하는 실험이 어째서 비윤리적이라는 것인가? 또한 연속적이라는 말도 매우 모호한 기준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생명과학자들이 원시선을 기준으로 생명의 기준을 나누고자 할 때 이 기준은 피터싱어가 동물권리옹호론을 펼치면서 주장한 신경을 가진 그래서 고통을 느끼는 동물이라는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 이 저자는 싱어에게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즉 이 저자는 동물권리옹호론에 매우 찬성하는 자일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배아에 대한 같은 기준에는 반대하는 이 저자를 우리는 모순투성이의 이념에 사로잡힌 자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저자는 또 이런 말을 한다.

"그러므로 체세포 복제 배아의 허용은 결국 인간 복제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연구 목적으로 창출된 체세포 복제 배아가 인간 복제에 악용될 개연성은 매우 크다."

첫째, 잠정적으로 생명공학의 거의 모든 기술은 인간복제를 위한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생명공학의 모든 기술에 대한 연구가 전면금지되어야 한다.

둘째, 현실적으로 인간복제는 불가능하다. 이에 대한 논의는 Junk DNA, 친자감별 그리고 복제를 참고하라.

"'근이영양증 그 밖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유전질환을 진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배아 또는 태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배아나 태아를 대상으로 하는 유전자 검사는 배아나 태아의 온전성 또는 전체성 보호를 전제로 한 건강 증진 및 치료 목적의 검사여야 한다. 전체성의 원칙에 따르면, 의료 행위 및 인간 생명과 관련된 모든 행위는 해당 생명을 그의 전체성 안에서 고려해야 한다. 인간의 몸은 유기적으로 결합된 통일된 전체이며, 따라서 부분에 대한 개입은 항상 전체를 고려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2] 따라서 배아 또는 태아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의료적 개입은 금지되어야 한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 많은 인간들이 제일 무섭다. 이 저자는 어디서 Wholism이니 환원주의니 하는 말들을 주워듣고는 전체적인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인지 알고 그 용어를 어디든 끼워대면 정당성을 획득한다고 믿는 무식한 학자다. 위의 인용문을 보자. 근이영양증이나 헌팅턴등의 유전병을 미리 진단하는 것이 전체성에 위배된다는 말인가? 전체성의 원칙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모든 유전정보를 스캐닝하는 것은 괜찮다는 말인가? 알려진 치료제가 없는 유전병을 미리 검사하고 이러한 태아를 미리 알아내는 것이 어째서 전체를 고려해야만 할 수 있는 행위란 말인가? 아마도 저자는 이러한 유전병을 알아낸 부모들이 유산을 시도할까봐 이를 우려하는 것 같은데, 이건 윤리적으로 결론이 나지 않은 미묘한 문제다. 저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헌팅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아이를, 그래서 20살이 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아이를 낳겠다는 말인가? 아니면 페닐케토뇨증에 걸릴 것이 100%확실한 아이라도 전체성의 원칙을 적용시켜 검사를 하지 않고 낳으라고 강요할 생각이란 말인가? 그 아이의 고통도 당신이 그렇게 자랑스레 말하는 카톨릭의 교리내에서 정당화된단 말인가? 에라이 또라이 쉑히야.

"제대혈과 같은 성체로부터도 줄기세포를 획득할 수 있다. 성체줄기세포 획득과정에서는 윤리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며, 성체줄기세포의 분화능이 배아줄기세포에 뒤지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다."

미안하지만 제대혈에서 추출하는 줄기세포는 성체 줄기세포와 다르다. 성체줄기세포라 하면 제대혈을 보관하지 못한 나같은 돈없는 사람일 경우 내 몸에서 뽑아낸 erythrocyte등을 말하는 것이다. 돈이 많거나 요즘에 태어난 아이들의 경우 제대혈에서 배아에서 크게 분화하지 않은 줄기세포를 보관했다가 이를 치료에 이용할 수 있으므로 당근 복제연구는 필요하지 않다. 이경우 두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제대혈을 보관하지 않은 이들은 복제된 세포로 치료될 수 있는 질병에 걸렸을 때 치료없이 그냥 죽어줘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저자들이 복제연구를 금지하기 때문에.

둘째, 전국민이 제대혈을 보관할 수 있어야만 복제연구가 필요없어진다. 그러면 국가가 나서야 하는데 그 보관에 드는 돈은 누가 지불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애 낳을 돈이 없어서 산부인과도 못가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택도 없는 소리다.

따라서 제대혈은 매우 좋은 선택이지만 복제연구도 함께 계속되어야 한다. 나는 허리가 안좋다. 언젠가 신경이 둔화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가능하다면 나의 체세포로 치환시킨 배아복제세포로부터 분화된신경세포를 주사해 낫고 싶다. 왜? 이 나의 요구가 비윤리적인가? 그러면 저자는 그냥 누워서 생을 마감해라. 나는 이렇게 치료받고 싶으니까.

또한 성체줄기세포 (제대혈이 아니다)를 이용한 연구는 생물학적으로 배아를 이용한 연구보다 어렵고 불가능하다. 이는 발생과정에서 생기는 DNA상의 비가역적인 생화학 반응 때문이다. 발생과적이란 저자의 말처럼 상당히 연속적인 반응이고 비선형적이다. 따라서 되돌린다는 것이 거이 불가능하다. 제대혈이라 할지라도 다른 세포로 분화시킨다는 것이 매우 힘들다. 왜냐하면 제대혈속의 줄기세포들도 이미 몇단계의 분화를 거친 순수하지 않은 세포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게놈상의 정보가 비가역적으로 변화된 세포들일 경우 핵치환을 위한 재료로 부적합하다. 그런데 타인의 체세포로 치환해서 이를 다시 다른 세포로 분화시킨다는 것이 과연 배아보다 쉽겠는가? 배아복제시에도 이미 어느정도 비가역과정이 진행된 배아세포를 되돌리는 데 274개니 244개니 하는 세포가 소요되는 것인데, 그리고 이것이 생명과학자들이 여전히 풀지 못한 Genomic imprinting이라는 것인데 저자가 진정으로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원한다면 이런 연구에 돈을 보태달라고 편지라도 써주길 바란다. 버려지는 배아가 많은 상황에서 윤리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더 위험한 성체줄기세포를 그것도 죽어가는 많은 이들을 지켜보면서 연구한다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지 저자는 생각해 보길 바란다.

정말 압권인 것은 글의 마지막 부분이다. 공인된 학술지는 아닐지라도 많은 이들이 읽는 학술잡지에 이따위 표현을 사용해도 되는 것인가?

"인간이 창조주께서 준비해주신 생식세포를 인공적으로 적출하여 핵 치환을 하고 줄기세포로 길러내어 병을 치료하는데 함부로 사용해도 되는 것인가"

한마디로 또라이 싸이코인 저자는 다시는 브릭에 글을 싣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한번 니 이름으로 된 글이 브릭에서 발견되면 나는 10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브릭 사무실로 뛰어들어가 너를 제명시켜버릴 만반의 자세가 되어 있으니.
by 취어생 | 2005/10/21 06:17 | 상식과 추측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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