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1일
대한민국에서 과학도로 살아감은..
2005년 7월 5일, 언젠가 이 제목으로 제대로 된 산문을 완성하리라 다짐한다. 관련 논의는 이곳을 참고

스스로의 게으름을 변명하려 해서는 안된다. 만약 자신의 교수가 과학에 대한 열정보다는 아침 9시에 출근하는 것을, 열정적인 토론과 논쟁보다는 데이터를 원한다면 당신은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그 교수를 떠나라. 그 교수를 선택한 당신이 잘못한 것이며, 교수를 바꿀 수 없다면 변명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한국에서 과학도로 살아간다는 것은, 열심히 일하여 논문을 낸다는 것이다. 자신의 실험과 관계된 일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가진다거나, 실험할 시간에 책을 읽는 다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주말도 없이 실험하는 이들은 칭송되며, 적은 연구비로 성공한 과학자는 모범이 된다. 창의적 사고는 노가다의 뒷전이다. 과학에 대한 진지한 사고는 거부된다. 과학도는 과학에 대해 생각하면 안된다. 과학이란 그냥 과학이다. 과학이란 반드시 국가발전과 결부되어야 하며, 연구계획서엔 반드시 그런 조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교수에겐 절대권력이 있다. 학생을 졸업시키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교수의 손에 달려있다. 따라서 강간을 당하지 않는 이상 학생들은 교수의 종이다. 교수는 반드시 학생보다 많이 아는 것으로 취급된다. 설사 당신이 최근의 논문정보들을 알고 이를 바탕으로 교수와의 논쟁에서 이길지라도 손해는 당신의 몫이다. 교수는 학생보다 적게 알수가 없다. 아무리 공부를 하지 않아도.

교수가 항상 안좋은 모델로 생각하던 사람이 자신을 정교수로 만들어준 논문을 낼지라도 그 사람의 논문은 칭송되지 않고 조용이 묻혀버린다. 그것은 교수의 사고속에서 하나의 예외일 뿐이다. 자신이 정한 기준속에서 살아가지 않는 학생은 교수에겐 바꾸어야만 할 예외일 뿐이다. 교수가 정한 기준속에서 살아가는 자들 중, 교묘히 그 기준을 이용하는 자들에 의해 실험실이 망가져 가도, 실험실 붕괴의 책임은 교수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있다. 아침에 실험실에 나와 실험을 전혀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만약 교수의 기준을 벗어난 자가 좋은 논문을 내고 실험실을 떠나서도 잘 산다면, 더이상 이 결과를 예외로 인정하지 못하는 교수는 그 학생의 허물을 모두 잊는다. 이것은 매우 편한 작업이다. 그 학생의 허물은 모두 사라지고 기존에는 칭찬조차 하지 않던 매우 새로운 기준이 그 학생을 칭찬하는 도구가 된다.

교수가 학생을 나무라는 것이 만약 그 학생을 위한 것이라면 이 모든것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는 이타적인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교수가 학생을 데이터가 없다는 이유로, 프로덕트가 없다는 이유로 나무란다면 그것은 결코 학생을 위한 일이 아니다. 교수도 인간이므로 자신을 위할 수 있다. 그러나 교수는 스승이다. 스승의 길중 하나는 제자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이유와 변명에도 불구하고 만약 당신이 교수에게 쓴소리를 듣는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이다. 그것은 당신이 대한민국에 살기 때문이고, 우리에게 과학은 국가경제의 초석이기 때문이며, 당신이 사는 이곳엔 과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에 태어나 과학을 하고 있는 것이 당신의 죄다. 그러므로 변명하지 말고, 욕하지 말아야 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다.

(1) 우리나라 대학 실험실에 티 타임이 있나요? : 없습니다. 그러나 교수들에게는 티타임이 존재합니다. 학생들은 교수들과 그런 자리를 할만한 자격여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스승이 스승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어도 스승이라는 이유로 존중받아야 하는 곳이 대한민국입니다.

(2) 있다면 거기서 정말 활발한 발상의 교류가 있습니까? : 없으므로 할 말이 없습니다. 교수들만의 잔치를 말하자면, 그들에게 교류라는 것은 무언가를 빌리는 행위를 뜻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연구하는 주제의 철학적 의미 따위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쓸데없다고 여깁니다. 그들은 줄곳 정치에 대해 떠들지 않는 것이 과학도의 의무라 여기면서도 정작 과학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3) 실험실 티 타임 공간이 우리 문화에 맞게끔 만들어져 있습니까? 티타임이 없으므로 공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티타임을 한답시고 만든 매점에선 미국식 샌드위치만이 허락되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라면은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허락되지 않습니다. 또한 매우 협소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마저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며, 아예 분위기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실험실의 사람들은 단지 뭔가를 빌리기 위해 존재할 뿐입니다.

(3) 교수들이 가끔 노가다 뛰는 학생들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한 기업형 후식 제공 말고 진정한 토론 클럽을 만들거나 기존 토론 클럽에 참가합니까? : 기업형 후식이 자주 제공되는 곳이 있으며, 이곳에서 과학에 대한 이야기는 금지됩니다. 일에 관한 이야기는 실험실에서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이런 곳에서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재수없다고 생각합니다. 토론 클럽은 존재하지 않으며 설사 학생이 그런 것을 만든다 해도 교수된 자가 그런 따위의 곳에 참가할 수는 없습니다.

(4) 교수들 중 학생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기존 토론 클럽에 참가하는 분이 계십니까? :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교수와 학생은 동등하지 않습니다.

(5) 학생들은 교수 앞에서 직설법으로 말할 수 있나요? : 없습니다. 할 수는 있으나 학생의 미래가 매우 걱정됩니다.

(6) 수컷 우두머리 침팬지의 경건주의가 그대들 교수들에게서 제거된 상태입니까? : 조선을 그대로 이어받은 나라에서 경건주의가 사라지는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7) 1주에 한 번 정도 교수와 모여 토론을 합니까? : 토론이 랩미팅을 말하는 것이라면 합니다. 허나 만일 토론이 과학에 대한 열정적인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라면 결단코 그따위의 일은 경건한 실험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실험실은 일하는 곳이지 떠드는 곳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과학도로 살아가겠다면 잠시 자신을 속여야 합니다. 과학이 없는 곳에서 잠시 몸을 숨겨 귀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날 수 있는 그날까지 침묵하십시오. 침묵이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by 취어생 | 2005/10/21 06:49 | 과학과 철학 | 트랙백(1) | 덧글(5)
Tracked from Bandi Story at 2005/10/26 22:26

제목 : 스승과 제자
대한민국에서 과학도로 살아감은.. 통쾌한 글이며,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담아둘만한 글이다. 작년 여름, 이와 관련된 주제로 어느 교수님께 "그런 것들이 싫다면 한국을 떠나라" 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분에 대한 정보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겠다. 물론, 이런 "불경죄"에 해당하는 논......more

Commented by 월덴지기 at 2005/10/26 22:08
정말 따끔한 글입니다. 이런 마음을 평생 흔들리지 않고 지니고 살아가는 과학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 주변에는 변절자들이 너무 많아서... ㅠ.ㅠ
Commented by 반딧불이 at 2005/10/26 22:19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글입니다...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0/27 03:20
사회 곳곳에 괴짜들이 넘쳐나게 해야 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홍세화씨의 똘레랑스보다 훨씬 넓은 의미의 관용이 사회에 자리잡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싸이코패스처럼 극단적으로 유해하지 않은 이들이라면 사회의 곳곳에서 청량제의 역할을 할 수 있고, 오히려 이러한 폭 넓은 의미의 문화가 과학문화니 과학대중화니 하는 논의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런 문화가 퍼질 수 있다면 대한민국이 19세기의 오스트리아 비엔나와 같이 되는 것이 어렵지 않고, 과학대중화는 자연스레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일이 됩니다.

변절자들을 욕하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그들은 시스템의 피해자들일 뿐입니다. 어쩌면 상황에 맞는 합당한 판단을 내렸는지도 모릅니다. 씁씁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두 분 모두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상희씨가 '과학과 철학'에서 조만간 심리학사를 주도적으로 도맡게 되실 것 같습니다. ^^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0/27 03:27
이제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이땅의 문화는 평균적인 인간을 양산하는 데 매우 최적화되어 있었습니다. 그 전통을 깨부수고 있는 신세대들이 가끔은 매우 자랑스럽다는..^^
Commented by 구경잘했수 at 2006/01/08 14:27
젊음으로 모든것을 대변 할 수 없다...무슨 뜻이냐,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학생의 티를 못 벗어든진 사회적경험도, 구속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모른다는 것이다. 평균적인 인간을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전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나머지, 자신의 감정을 다르게 표현하는것 같은데...스승과 제자의 대화의 방법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것, 즉 친구와의 대화를 만들어 가듯이, 스승도 마찬가지라는 거지요...당신 생각하는것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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