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1일
멘델과 다윈: 음모론 따위는 없다!
2005년 10월12일, 멘델 주간에. 관련 논의는 이곳을 참고.

멘델과 다윈

그의 '식물 잡종화에 관한 연구'에서 멘델은 영어로는 evolution 혹은 evolutinary history로 번역되는 용어인 Entwicklungsgeschichte를 두번 사용한다. 이 단어는 멘델의 논문 거의 첫부분에 등장하는데, 연구의 목적과 관련되어 다음과 같이 사용된다. "이 실험은 무시되어서는 안되는 유기체의 진화사에 관한 물음에 대한 중요한 해결책에 이르게 해주는 하나의 옳바른 길이다". 멘델은 분명히 진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멘델이 논문을 쓸 당시 다윈의 '종의 기원'은 매우 유명한 책이었고 멘델의 절친한 학교친구였던 알렉산더 마코브스키는 멘델이 논문을 제출하기 한달전에 브루노의 자연사학회에서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에 대해 강연하기도 앴다.

많은 연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위니즘에 대한 멘델의 관점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윌리엄 베이트슨은 멘델의 사촌이 그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하며 멘델이 다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쓰고 있다. 피셔는 멘델이 자신의 법칙이 진화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기반을 형성할 것임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믿었다. 피셔의 이러한 언급이 '진화종합설'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삽Saap은 말한다. 1960년대에는 대부분의 저자들이 멘델을 다윈의 충실한 지지자로 생각했다. 반면 올비는 다윈의 잡종의 역할에 대한 관점이 멘델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를 부인했다. 캘린더와 비숍은 1996년의 논문에서 멘델리즘은 역사적으로 "특별한 창조 Special Creation"의 교리의 형성과 더불어 정교화되었기 때문에 자연선택에 의해 자손의 점진적 수정이 일어나는 진화라는 다윈의 관점과는 어울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렐은 멘델이 자신의 관점과 다윈의 관점 사이에 논쟁이 될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저자들 사이의 의견의 불일치는 일차적으로는 멘델이 다윈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멘델이 다윈을 직접 언급한 것은 딱 4번으로 그의 1870년 논문에서 1번, 네겔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3번이다. 이 경우에서 모두 다윈에 관한 강한 반대나 지지 어느것도 보이지 않는다.

실제 멘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1866년의 논문이므로 이 논문 이전에 다윈이 멘델에게 준 영향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의미있는 일이다. 멘델이 구할 수 있었던 다윈에 관한 자료는 '종의 기원'뿐이었고 멘델은 '종의 기원' 3판의 독일어판 번역본을 읽었다. 멘델은 아마도 이 책을 1863년 경에나 읽었을 것이다. 멘델은 1861년에 강연을 통해 처음 다윈에 대해 알게 되었고, 브루노의 자연사학회에 독일어판 번역본이 들어온 것이 1863년이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는 멘델의 실험의 마지막 해였다. 따라서 다윈의 책이 멘델에게 영향을 주었을지라도 실험의 디자인이나 수행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이고 다만 실험을 해석에만 영향을 미쳣을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멘델이 소유하고 있던 '종의 기원' 번역본의 밑줄들과 언급들(이후 방주)을 통해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멘델의 방주는 첨부파일로 제시되어 있다. 멘델은 단지 18페이지에만 방주를 달아 두었는데 그 중 8은 1~4장(이중 5은 2장 '자연계에서의 변이'에 있다)에 있고 나머지 10은 8장과 9장(이중 8은 8장 '잡종주의'에 있다)에 있다. 이러한 밑줄들 외에 멘델이 직접 썼다고 생각되는 언급은 딱 두개인데 하나는 정체를 알 수없는 숫자들이고 하나는 (pag 302)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302페이지를 의미하며 '종의 기원'의 302페이지에는 멘델의 밑줄이 있다. 밑줄이 쳐진 부분은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잡종의 첫번째 교배에서 나타나는 약한 변이의 정도는 계속되는 세대에서는 극단적인 변이도와 비교해 볼 때 주목되는 희한한 사실이다." 아마도 이 구절은 멘델에게 매우 흥미로웠을 것이다. 멘델이 연구하고 있던 그 주제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멘델은 이 구절에 및줄을 치면서 곧 자신의 연구결과가 이 희한한 사실을 설명해줄 것이라고 므흣해했을 것이다.

책속에서는 이 희한한 현상에 대한 다윈의 설명이 계속 이어지는데, 다윈은 이러한 약한 변이도가 '생명조건 Conditins of Life(아마도 외부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 생식체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잡종의 첫세대는 오랜 시간동안 '생명조건'에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임일 수도 있고 생식계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변이에 영향을 주는 이러한 생식계의 이상이 약한 변이도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멘델은 이 '생명조건'이라는 말에 특별히 밑줄을 쳐놓았는데 '종의기원'에 등장하는 이 말에 총 세번의 밑줄을 쳤다. 그 중 가장 먼저 나오는 7페이지의 다윈의 말은 "충분한 정도의 변이도를 얻기 위해서 유기체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생명의 조건'에 노출되어야만 하고, 일단 이러한 변이가 조직화되면 세대를 이어 변이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이의 유일한 원천을 '생명 조건'으로 한정하게 되면 수백년동안 같은 조건에서 사육되어온 가축들에게서 나타나는 변이의 원천을 설명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이 점에서 멘델은 다윈의 관점속에서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멘델은 변이의 유일한 원천이 '생명조건'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다윈이 멘델에게 미친 영향을 언급했지만 1996년 오렐만이 멘델이 '종의 기원'에 남긴 방주들을 사용했다. 어떤 저자들은 이처럼 많은 방주가 멘델이 다윈의 저작에 큰 관심을 가졌음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게르트너의 저작과 다윈의 1868년 책인 "가축화 과정에서 동물과 식물의 변이에 관하여"에는 더 많은 방주들이 있다. 멘델은 책에 밑줄 긋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멘델은 다윈에게 모순되는 점이 있음을 알고 있었고 어떤 관점을 지지하기도 했지만 그의 논문에 다윈의 이름을 등장시키지는 않는다. 또한 멘델은 당시 신부들에게 유행했던 '특별한 창조'의 개념을 언급하지도 않는다. 멘델의 논문은 자신이 수행했던 실험과 이에 대한 자세한 분석에 철저하다.

멘델이 종의 기원에 큰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뒤에 남겨둔 이유는 멘델 자신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자세함'이었기 때문이다. 게르트너의 잡종에 관한 실험기술이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제공한 실험들의 기술보다 훨씬 자세했음에도 불구하고 멘델은 이러한 기술이 자세하지 않다고 네이글리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식물잡종에 관해 기술하면서 사용한 정보들은 대부분 게르트너의 것이었다. 따라서 '종의 기원'에서 식물잡종을 다루고 있는 부분은 게르트너가 수행한 연구의 요약이었고 이는 이미 멘델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멘델은 네이글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게르트너 연구의 자세하지 않은 기술 이외에도 그의 연구가 자신에게는 전혀 재현이 되지 않고 있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멘델이 다윈이 식물잡종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에 크게 관심을 가졌을리는 없다.

이러한 사실들이 멘델과 다윈사이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좋은 도구가 된다. 사실 다윈이 멘델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후대 사가들에 의해 다윈의 서가에서 멘델의 책이 발견되었고, 멘델이 다윈에게 자신의 논문사본을 보냈고, 멘델이 런던에 왔을 때 다윈을 만났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실제 다윈의 서가에서는 멘델의 논문이나 편지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유일하게 발견된 것은 Focke의 논문이었다. 이 논문에 멘델의 논문이 언급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 페이지는 개봉되지 않았고 따라서 읽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멘델이 런던을 방문했을 때에 다윈은 런던에 있지 않았다. 사실 멘델이 런던에 갔더라도 다윈을 만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첫째 그와 다윈사이에는 언어장벽이 있었다. 멘델은 영어를 구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장벽을 제쳐두더라도 사실 멘델이 다윈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윈의 저술방식에 있다. 멘델은 자세한 기술방식을 선호했고 다윈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멘델은 다윈을 만나더라도 별로 건질 소득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멘델은 매우 꼼꼼한 사람이었고 연구방식에 있어서도 그랬다.

즉 멘델은 다윈에게 크게 영향을 받지도 않았지만 다윈에 대해 크게 반감을 가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by 취어생 | 2005/10/21 07:05 | 과학과 철학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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