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1일
오염된 생명
2005년 8월 2일, 브릭에 실린 박희주의 글에 분노하다. 관련 논의는 이곳을 참고

박희주의 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실험하면서 짬날때마다 조금씩 쓴 말머리 부분입니다. 뒷부분이 완성될런지는 저도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소제목과 참고문헌은 다 찾아두었습니다. 재미삼아 읽으시길 바랍니다.

오염된 생명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이 있다. 겉은 제법 비슷하나 속은 전혀 다름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말이 가지는 어감은 매우 부정적이어서 누구도 자신을 수식하는 단어로 사이비를 택하려 하지 않는다. 공자는 사이비한 것을 미워한다고 했고, 그들은 덕을 해치는 자라 했다 . 따라서 사이비과학이란 겉으로는 과학을 가장하고 있으나 속은 전혀 과학이 아닌 가짜 과학을 의미한다. 공자의 시대에도 존재했던 사이비는 현대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사이비와 사이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인류가 지고 가야 할 숙제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브릭 바이오웨이브에 ‘생물학사 및 생명윤리연구회(이하 생생회)’의 이름으로 올라오는 글들 중 몇몇이 사이비함을 보여주기 위해 쓴 것이다. 특히 이성규와 박희주의 논문은 사이비의 정도를 넘어 심각한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다. 만약 과학계에 자체정화능력이 존재하고, 그것을 법체계에 비유할 수 있다면 이들은 범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2004년 6월 이성규는 <흔들리는 다윈의 自然選擇說> 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기고했다. 실상 이 글은 <자연선택설과 유전자 개념의 역사> 라는 이름으로 전국역사학대회에서 발표한 글을 재탕한 것이다. 더구나 이 글의 원류는 이미 2001년 <한국과학사학회지>에 그가 기고한 논문 <진화론 논쟁에서의 신라마르크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 실제로 생생회의 이름으로 올라오는 많은 논문들이 브릭을 위해 작성된 글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발표한 글을 조금 짜깁기 해서 재탕하는 식이다. 일례로 이번에 박희주가 바이오웨이브에 기고한 글은 <미국 창조론 운동의 최근 동향 - 지적설계운동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2000년 서울대학교 지적설계연구회 NOAH의 강연회에서 발표한 원고의 재탕이다 .

과학사적인 측면에서 창조과학운동의 역사를 다룬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다. 과학과 종교와의 관계는 과학사에서 흔히 다루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러한 과학사적 작업이 과학자들의 작업이나 과학제도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한 개인의 심리적 상태 안에서 발견과 정당화의 이분법이 허용되지 않는다 해도, 각 분과학문은 서로의 분야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을 가져야 하며, 이 경우 과학사는 과학에, 과학은 과학사에 서로 침범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미덕이다. 하나의 이론과 가설이 과학 속으로 편입되는 데 있어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영향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과학자들 스스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과학사학자들의 논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위대한 과학자가 역사와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 작업은 순수한 과학자의 몫으로 남는 것이지, 과학사가의 몫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원칙은 헌법에 보장된 정교분리와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해둔다. 과학은 철학이나 역사학과 동떨어진 학문은 아니다 . 과학과 과학사, 과학과 과학철학이 서로 동떨어져 버린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기대는 무모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19세기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시도되었고, 과학의 여명기에 철학과 분리되지 않았던 과학의 역사를 보아도 과학사가는 무조건 과학에서, 과학자는 무조건 과학사에서 물러나 있으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콜링우드는 자연과학에 대해 무지한 과학철학자가 자연과학에 대해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것조차 우둔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하물며 과학사학자가 진행중인 자연과학적 방법론과 이론에 대해 간섭하는 것은 우둔을 넘어 범법행위가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따라서 논의는 두 갈래의 성격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 과학사 및 과학철학적 논의와 과학적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 이성규와 박희주의 글은 과학사의 영역에 속한다. 타분과학문에 대한 존경심이라는 미덕이 발휘된다면 그 논문은 현재 작업중인 과학자들의 이론과 방법론에 대해 영향을 미치려는 노력을 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현재 과학에 종사하고 있는 과학자가 과학사와 과학철학계의 담론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런 경우가 국내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들의 작업에 영향을 미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다. 이는 한국의 과학문화와 관련이 있는데,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는 많은 인문학자들은 과학자들이 그들의 담론에 동참해주기를 바란다 . 서양의 경우 많은 과학자들은 동시에 과학사가이기도 하고 과학철학자이기도 하다 . 그러나 이 경우에도 과학자들은 자신이 속한 학문분야의 역사과 철학적 의미에 흥미를 느껴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동참하는 것이지 이들을 제어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성규와 박희주의 글은 이러한 측면에서 과학을 둘러싼 학문 사이의 미덕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이성규와 박희주의 글이 과학사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사실 그들의 작업에대해 과학적 논의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그들은 과학사적 작업을 통해 과학이론과 방법론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과학자들의 영역을 침범했고, 영역이 침범 당했다면 누군가는 그 영역을 사수하기 위해 방어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어의 일환으로 그들과 과학적 논의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그런 식의 논쟁은 과학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학문체계를 과학으로 대우해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과학사학자가 과학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정당화해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지적설계론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창조과학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리쳐드 도킨스와 스테판 제이 굴드는 이런 의미에서 큰 오류를 저지른 셈이다. 과학적 논리로 창조과학자들을 이길 수는 없다. 이 점은 이미 오래 전에 아이작 아시모프가 지적한 바 있다 . 과학자들의 토론에는 증거와 추론이라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존재하지만 창조과학자들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다. 게다가 과학자들은 연기에 능숙하지 못하다. 또한 도킨스와 굴드가 자주 사용하는 것처럼 다윈에 대해 반박하는 글들에 대해 다윈의 구절로 반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것은 과학이 전혀 진보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해 버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이라는 지식체계에 지나친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다른 지식체계들을 무시하는 처사는 창조과학과 같은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학문은 아니다. 과학우월주의의 늪은 오히려 창조과학의 늪보다 깊다(조금 자세히 설명). 그들과 과학철학적 논의를 하는 것도 어리석다 . 사실 과학철학이 과학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과학철학적 논쟁에서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사람이 이기던 지던 간에 그로 인해 과학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과학자가 아닌 과학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빌려 창조과학이 과학인가 아닌가를 논하는 것만큼 우둔한 짓거리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서 그들로부터 과학을 방어할 것인가. 따라서 그들을 깨우치기 위해 나는 ‘역사’와 ‘비교’의 방법을 선택한다. 역사적 방법이란 과학과 종교가 걸어온 길을 살펴봄으로써 현재 우리의 모습을 둘러보는 것이다. 비교의 방법이란 일종의 패러디다. 창조과학자들의 작업이 과학이 아니라 일종의 유머라면 우리도 유머로 받아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다. 아시모프의 말처럼 우리도 그들처럼 현란한 연기력을 동원해서 해학과 풍자의 미학으로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의 선택은 현명한 상식을 가진 이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by 취어생 | 2005/10/21 07:24 | 상식과 추측 | 트랙백(1) | 덧글(14)
Tracked from decadence in.. at 2005/11/02 14:26

제목 : 『지적 설계 이론 입문』1~4권
지적 설계 이론은 태고적부터 사실로 인정되어 왔으나 최근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반대 이론을 잠재우기 위해 최근에 새롭게 철저히 연구되고 있다. 이 시리즈는 이러한 연구의 결정체로서 풍부한 예를 들어가며 지적 설계 이론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성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선 1권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1권 두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장에는 지적 설계 이론을 지지하여 관련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각 종교 단체들의 성명문이 실려 있다.......more

Commented by browne at 2005/10/30 11:55
최근 도킨스의 저작(악마의 사도)을 보면 창조론자들의 전략이란 진화론자들과 논쟁을 했다는 그 사실 자체를 중요시 하고 그것을 선전하므로 - 논쟁을 했다는 사실은 결국 양 진영이 논쟁할 가치를 서로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므로 - 어떤 형태로든 그들과 맞상대를 해 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던데요..

창조론자들의 공격에 유머적으로만 대응을 하는 것은 어떤 경우 오해가 생길 수도 있을 듯합니다.(말씀의 뜻은 백번 이해하지만)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0/30 16:40
'역사'와 '비교'의 방법이라고 했습니다만... ^^ 도킨스는 현재는 그런 방법을 택했는지 모르지만, 과거엔 분명 과학적 우위로 창조론을 박살내려 했던 인물입니다.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0/30 16:41
참고로 현재는 이런 종류의 반박에 흥미를 잃어버렸습니다. 더 재미있는 공부가 많아요!
Commented by intherye at 2005/11/02 14:26
링크된 박희주씨의 글은 전에 어찌어찌 한번 보았던 것이로군요.
창조론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진지한 이론이 되기엔 너무 웃긴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역사'의 방법은 의도적으로 취할 수 있는 게 사람들로부터 저절로 취해져야 하는 방법일 듯해서 대응책으로서는 뭔가 조금 아쉽습니다만.. 유머에는 웃어주는 게 예의라는 점에서 '비교'에 동감합니다. (다만 원래 TV 개그 프로그램도 안 보시는 일선의 과학자 분들께서는 그냥 무시해버리고 본업에 열중해주시는 게 좋겠지요? ^^)

덧글들을 보고: 악마의 사도를 보니 도킨스 할아버지는 이제 불같이 화내면서도 웃고 웃기는 여유가 있더군요. 하하.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1/03 15:41
개그 프로그램 자주 보는데요? ^^;; 진지하기만 한 과학자의 이미지는 버리시라니깐요! ㅋ
Commented by intherye at 2005/11/03 23:45
아, 과학자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여러 과학자분들 중에 그런 분들 말씀이었습니다. ^^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1/04 13:03
그런 과학자랑은 사귀지 마삼~~ㅋㅋ
Commented by 보드라우미 at 2007/01/20 18:11
실상을 아는 과학자분들이나, 그 방면에 관심과 지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코메디로 보이네요.

그야말로 특정 근본주의 종교인들의 전형적인 논리가 등장하는군요.

"유물론적 과학" "과학 지상주의" 운운......

신을 믿든 안 믿든, 특정 종교의 교리를 믿든 안 믿든 간에,
실제 증거에 의해 밝혀진 객관적 사실들을 부정하려 드는 저 태도......

그야말로 교묘한 속임수입니다.

특정 종교 자체를 적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저런 망발을 볼 때마다 한심해서 한숨이 푹푹 나옵니다.

자신의 취향에 세상의 증거물을 뜯어맞추려는 저 태도......
'과학 지상주의'니 '유물론적 과학' 운운하며 망상을 합리화하려는 저 태도......

어릴 때 라디오 기독교방송에서 창조론 주장하는 인터뷰 듣고 경악한 이후로,
저는 근본주의 종교인들의 집착에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습니다.

모든 증거를 면밀하게 검토해봤을 때 진실이 명확한데도,
억지로 진실을 외면하고 자기 편한 대로 믿으려는 저 태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서요?
창조설도 마찬가지 수준이지요.
저러다 나중에는 자기 어린 시절까지 부인하겠습니다.

사실 코메디 상황에는 웃어줘야 하는데,
저런 잘못된 교육을 순진한 어린이들 상대로 하고,
지성의 요람인 대학교에서도 공공연히 실시하는 망발들을 보며,
암담함을 느낍니다.

내 몸에 옷을 맞추는 게 아니라,
옷에 내 몸을 맞추려는 저 해괴망측한 시도........
볼 때마다 답답해집니다.

훗날에 이런 해프닝들을 웃으며 돌아볼 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날은 언제나 올까요?
Commented by 보드라우미 at 2007/01/20 20:20
그러고 보면...... 이 답답함은,
저런 거짓말이 득세해서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되는 듯 합니다.

저런 거짓말이 득세할 리가 없다는 자신감이 충만하다면 화가 나지도 않고 그냥 웃기고 말겠지요.
과거에 온갖 종교와 이념 광기로 인류역사가 얼룩졌다는 사실을 뻔히 알기에,
그래서 불안한 건가 봅니다.

웃음은 여유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분노는 급박한 긴장상황에서 생겨나는 거구요.

그러고 보면 좀 더 자신감과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겠네요.
그리고 세상을 속이려고 작정한 사람들을 진지하게 응대해준다는 것 자체가 과학자들에게는 손해입니다. 그런 점에서 취어생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Commented by 존다리안 at 2007/03/05 17:30
그러고 보면 대중의 과학 계몽이 늘 실패한 이유가 나름대로 짐작이 갑니다.
과학자들은 확실히 뭔가 꽁하기만 한 구석도 있었어요.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7/03/06 09:45
대중은 과학의 계몽의 대상이 아닙니다. 과학은 스며들 뿐 계몽은 불가능합니다. ^^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7/03/06 09:47
종교도 비슷한 것 같지 않나요? 따지고 보면 모든 종교도 믿으라고 강요해서 믿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상황 속에서 민중이 요구하는 이상이 종교의 이상과 일치할 때 민중은 적극적으로 종교를 받아들입니다. 기독교도 불교도 그런 이유로 수입되었죠. 과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 땅은 그럴 준비도 안되어있고 상황도 아닌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존다리안 at 2007/03/07 20:26
취어생님께....
그런데 적쟎은 과학 쪽 관계자들은 과학을 대중의 계몽수단으로 간주하니 문제지요. TT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7/03/07 23:05
그런 애들이 좀 계몽을 당해야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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