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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1일
원문: ZF Axiomatization of Set Theory & Russell's Paradox, 아래 부분이 잘렸으므로 반드시 원문을 볼 것!
FOS(Foundation of Set Theory) 1: Mathmatical Antinomies and Semantical Antinomies Wittgenstein에 의하면 수학의 발달은 결코 역설의 해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 과연 그럴가?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논리적 역설에 관심을 가지는 대수학자, 기하학자, 특히 토폴로지나 호모토피분야의 수학자를 보기는 힘들다. 하다마드 같은 수학자는 수학의 표현은 언어적이고 논리적이지만 한 수학적 발상 혹은 발견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Jacques Hardamard: The Mathematician's Mind,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5(초판:1945)).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점은 현대 집합론의 공리화는 논리적 역설, 실례로 러셀과 칸토르의 역설을 해결하려는 작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문제는 집합은 한 논리적 개념인가? 괴델은 집합을 한 원초적인 논리적 개념으로 본다. 반면에 E.W. Beth(The Fopundations of Mathmatics, Amsterdam 1959)는 이들을 수학적 역설로 분류하였다. 일단 이러한 문제는 접어두자. (i) 수학적 역설 Russell's Antinomy: 어떤 집합도 그 자신을 원소로 가지지 못한다(집합의 고유 성격). 이제 한 전체 집합이 U가 있다면 모순이 생긴다. U가 전체 집합이므로 U자신을 원소로 가진다. U가 자신을 원소로 가지지 않으면 U는 - 집합의 고유한 성격으로 인하여 - U에 속한다. 이 모순이 엄격한 의미의 논리적 성격을 가지게, 즉 원래 러셀이 의도한 형태로 바꾸는 것은 간단하다. "Calling the property of not applying to itself 'impredicable', we arrive at the paradoxical consequence that impredicable is impredicable iff impredicable is not impredicable"(FOS, p. 7). (이러한 식으로 집합에 관한 모든 역설들을 순수한 논리적인 것으로 변형할 수 있는지 따져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Cantor's Antinomie: 모든 집합들의 집합 U를 가정하고 이것의 Power Set, 즉 U의 모든 부분집합들의 집합 PU를 가정하자. 그렇다면 - 칸토르의 정리에 의해 - Card(U) (ii) 의미론적 모순(FOS, p. 8-10): 이 종류의 모순은 단어, 표현 혹은 문장의 의미 그리고 진위 여부와 관계한다. 대표적인 실례는 The Liar Paradox일 것이다. 그 밖에 Richard's Antinomy, Grelling's Antinomy가 있다. FOS2-1: 원초적 개념들에 관하여(On Primitive Concepts) 레셀의 역설과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중요한 역설이 실제 현대 집합론의 공리화에 어떤 역할을 끼쳤는지 살펴보기위한 첫 걸음은 당연히 그 이론의 원초적 개념(primitive consept)들을 살펴보는 것일텐데 ... ! 일단은 집합이라는 개념이다. 직관적으로 한 집합은 어떤 대상들의 모임이라고 여겨진다. 문제는 그 대상이 또한 집합이 될 수 도 있고 집합이 아닌 개별자(individuals)가 될 수 도 있다. 집합과 개별자의 구별은 '원소(element)'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서 쉽게 이루어진다. 원소들이란 집합들과 개별자들 모두를 함축하는 개념이다. 구성원들(members)을 가지는 원소들을 집합이라 하고, 구성원들을 가지지 않는 원소들을 개별자들이라 부르면 된다. x가 y를 한 구성원으로 가진다함은 "x∈y"로, x와 y가 동일하다함은 "x=y"로 표기하자. ('=' 또한 '∈'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 이유: x와 y가 집합이 아닌 개별체로서 동일한 경우가 있기 때문임!) 이제 집합, 개별자, ∈ 그리고 =등은 집합론의 공리화에 있어서 원초적 개념들인 것이다. 그러면 한 이론의 공리화에서 원초적 개념이란 무엇일가? 원초적 개념(Primitive Concept) 유클리드 시대로 돌아가보자. 그는 점, 직선과 같은 개념들은 정의될 필요가 없고 우리의 공간에 관한 직관과 실제 물리적 공간은 이 개념들에 의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 개념들이 정의될 필요가 없다는 것은 그 개념들 각각이 독립적으로 스스로 자명(self-evident)하기 때문에 정의할 필요도 없고 정의될 수도 없음을 뜻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스스로 자명하다는 말 자체가 무의미 하다. 그런데 문제는 비유클리드 기하학도 나중에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공간에 관해 유일한 직관이 있다는 믿음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원초적 개념들이 스스로 자명하다는 점까지도 위협한다. 현대적 관점에서 공리들(axioms)이란 어떤 유한개의 원초적 개념들 혹은 용어들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 개념들은 스스로 자명한 것이 아니다. 결국 어떤 개념들의 원초적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집합론의 공리화 자체도 달라질 수 있겠다. 얼핏 보기에 이러한 관점은 힐버트의 형식주의(formalism)를 연상시키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의미를 다루는 분과를 Semantics라 한다면 의미가 표현되는 형식만을 다루는 것을 Syntax라 할 수 있다. 그가 Foundation of Geometry에서 한 작업은 점과 직선 같은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와는 무관하다. 원초적 개념이란 힐버트에게 있어서는 어떠한 의미나 내용이 없는 탓에 '원초적으로 무의미한 기호 혹은 용어'라고 불러야 적당할 것이다. 결국 그가 기하학의 기초론을 연구한다고 할 때 그는 어떤 공간의 특성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관심을 두는 바는 단지 기하학의 언어의 Syntax를 연구하는 것인데, 어쨌든 그의 형식주의는 나중에 괴델선생이 나타남으로 크게 위협을 받는다. 중요한 것은 한 공리체계의 무모순과 완정성을 보이면 될 뿐이지 그 체계의 의미론적 해석은 불필요한 작업이다. 반면에 공리들이 원초적 개념들의 의미를 규정한다 함은 그 개념들의 독자적인 자명성은 거부하지만 그 공리화의 배경이 되는 전이론(pre-theoretical)적 단계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공간, 집합 등에 단 하나의 유일한 직관이 있음은 부정된다. 따라서 유클리드 기하학은 우리의 직관에 뿌리밖힌 공간의 본질적이고 유일한 지식을 표현하고, 그 지식은 - 우리의 직관에 뿌리밖혀 있는 한 - 외적 경험을 필요로하지 않음으로 모두 선험적(a priori)이라는 칸트식의 주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다. 원초적 개념에 관한 현대적 관점에 따라서 우리는 단지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화 혹은 이러이러한 원초적 개념들은 그 기하학에서 이러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그 개념들이 다른 기하학에서는 또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므로 다른 방식의 공리화를 요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더욱이 한 수학 이론이 여러 가지 동등한 공리체계들에 의하여 논리적으로 표현될 수 있을 때 그 모든 공리체계들이 동일한 원초적 개념들을 가질 이유는 없다. 결국 한 원초적 개념은 한 공리체계 내에서 형식적으로 정의되지 않은채 관계된 공리들의 해석함에 따라 다른 원초적 개념들과의 상관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부여 받게 될 것이다. 역으로 그 개념들에 담긴 전이론적 직관은 그러한 공리체계로 표현될 것이다. 그리고 한 공리체계 내에서 원초적 개념들을 근거하여 다른 개념들을 정의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 점 또한 이 공리체계에 관계하여 상대적인 의미를 가질 뿐이다.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반대는 다음일거 가튼데 ... ! "자네 model theory라는거 못들어 봤나? Semamtics와 Syntax 그것들은 완존히 서로 독립된거란 말일세! 공리화 작업은 당연히 후자에 속하지! 공리화에서 원초적 개념이란 실제루 없고 단지 무의미한 원초적 용어들 몇 개가 필요하며 다른 것들이 이들로부터 정의되는 것이지! 의미는 단지 그 공리체계가 model theory에 의하여 각각의 용어들이 해석되고 진리조건이 부과될 때만 나타난다네!" 공리체계가 아무리 형식화된 형태를 띤다 하더라도 공리화 자체가 의미와 무관한가 하는 문제는 제쳐두자. 문제는 model theory가 집합론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공리화된 집합론 자체를 언급한 반박의 식으로 해석할 무기는 없다. 집합론의 한 공리체계가 심지어 형식화 되기 이전의 집합에 관한 혹은 다른 어떤 수학적 개념들에 의해 해석된 경우, 이러한 해석은 역으로 그 체계를 공리화하는데 담겨진 직관으로 볼 수 있지 않는가. 여전히 집합론의 공리화는 아직 까지는 Semantics와 Syntax의 완전한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는 전쟁터인 것 같다. 이로부터 그 둘의 효과적인 역할 분담론과 개념적 구별이 무시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FOS2-2: 동일성, 아메바분열에 적용에 있어서 문제점 (여기서 문제점은 나의 지적임) 동일성 "="을 정의되지 않은 원초적 개념, 엄밀히 말하면 'two-placed predicate' 따라서 하나의 원초적 관계(primitive relation)으로 보는 경우, "="는 논리학, 즉 'the first-order predicate calculus with equality'에 포함된다. 다음은 일반적으로 논리적 참으로 여겨진다: (i) Reflexivity(재귀성): 임의의 x, x=x (ii) Symmetry(대칭성): x=y.→.y=x (iii) Transitivity(이행성?): (x=y)∧(y=z).→.x=z (iv) Substitutivity(치환성?): 임의의 진술 P(x)에 대하여, P(x)이고 x=y 이면, P(y) 또한 성립 부록: 아메바의 분열 A라는 아메바가 t1에서 A1과 A2로 분화되고 t2에서 죽었다고 하자: 장소 p1 A2 장소 p2 A A1 A3 t0 t1 t2 (시간) 여기서 두 사물 O와 O'이 임의의 주어진 시간 t에 대하여 똑같은 특성들 F를 공유한다면, 구별될 수 없다는 동일성(identity of indicernables) 혹은 라이프니츠의 원칙을 일단 적용해보자: ∀t∀F(F(O,t)↔F(O',t)).→.O=O'. 그 결과는 A는 A1, A2 및 A3와 동일한 반면, A1과 A2는 다르다: (i) A가 t0에서 가지는 모든 특성들에 대하여, A1은 그것의 가능과거라 할 수 있는 t0에서 또한 가지고 있었다; A1이 t1에서 가지는 모든 특성들에 대해서, A는 그것의 가능미래라고 할 수잇는 t1에서 또한 가질 것이다; 이러한 식으로 "∀t∀F(F(A,t)↔F(A1,t)).→.A=A1"이 성립한다. (ii) 위와 같은 유추에 의해 A와 A2 또한 동일하다. (iii) 또한 - (i)과 같은 유츄에 의하여 - A와 A3는 동일하다. (iv) 반면에 A1은 시간 t1에서 "p2에 위치한다"라는 특성을 가지는데, 이 특성은 A2에는 적용되지 않는 이유로 A1과 A2는 동일하지 않다. (i), (ii)와 (iv)는 동일성의 논리적 참인 이행성(transitivity)를 깨트린다: "A2=A" 그리고 "A=A1"이지만 "A2≠A1"이 성립한다. 이러한 사례는 특정 공리화에 등장하는 원초적 개념이 항상 보편적인 것은 아님을 함축한다. FOS2-3: Axiom of Extensionality, 부분과 요소, 외연과 내연의 구별(부분과 요소는 책과 무관한 나의 관점임) 부분과 원소(Parts and Elements) 1. 보통 한 집합은 {a, b, c, d, ... }로 표현하는데 ... . 여기서 이 집합의 구성원(member) a, b, c 등은 각각이 또한 임의의 집합이 될 수도 있고 집합이 아닌 개별자(individual)가 될 수도 있다. 즉 그 구성원은 임의의 원소(element)이며, 원소는 - FOS2-1에서 지적되었듯이 - 하나의 집합이거나 아니면 개별자이다. 실례로 {아인슈타인, {금성, 수성}}이라는 집합은 집합이 아닌 원소, 즉 개별자 '아인슈타인'과 집합인 원소 '{금성, 수성}'이라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진다. 1.1. 그런데 아인슈타인을 집합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안슈타인 또한 눈, 코 및 기타 장기들로 이루어지는데 ... . 장기들은 아인슈타인을 이루는 부분(part)으로 여겨지지만 안인쉬타인 자체가 개별자로서 집합이 아니라고 한다면, 부분과 한 집합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원소의 구별성은 철학적으로 규명되어야 한다. 부분과 원소의 구별에 관한 필요충분 조건이 무엇인가? 이 문제를 남긴다. 일단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음이다 (i) 한 개별자 A가 임의의 집합 B의 부분이 될 수 없다. (A의 부분들은 B의 구성원이 될 가능성은 있다.) (ii) A가 임의의 집합 B의 원소라 할 때 A의 부분은 B의 원소도 부분도 둘 다 될 수 앖다. 1.2. 또한 아인슈타인의 내장은 동물의 내장들이라는 집합의 구성원, 즉 원소가 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결국 그의 내장 또한 이 집합에서는 한 개별자로서 원소가된다. 그렇다면, "한 주어진 것이 개별자로서 한 집합의 원소가 되는가?" 아니면 "다른 개별자의 부분이되는가?"라는 두 문제가 발생한다. 심지어 "개별자라는 분류개념도 필요가 없고, 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하나의 전체라는 것과 연관된다는 관점도 가능한가?" 적어도 집합론은 첫 째 질문에 국한된다. 이러한 점은 존재의 범주적 구별 방식이 반드시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1.3 위의 1, 1.1, 1.2에 의하면, 집합론이 유기체 혹은 생명현상에 적용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장기 B를 한 생명체 A의 부분이라 할 때 분명히 B자체가 심지어 인공장기에 의해서도 대치될 수 있다. 그렇지만 A와 B의 관계는 A의 활동성 혹은 기능(function)과 관계되고, 그 활동성의 한 단위는 B의 기능이다. 이러한 사유를 만족하는 논리적 설명체계를 생각하는 것은 - 마치 Quantum-Logic처럼 - 흥미있는 일이다. "Logic of Biology"이란 분야가 없을 이유는 없다. (한 때 생물학으 논리에 관한 기초에 과님을 가졌지만 지금은 머리 속에서 다 사리지고 공책도 어디 갔는지 없다는.... 아쉬운 대목!-,.-) 외연, 내연 그리고 동일성(Extension, Intension and Identiy) 2. 우리는 위에서 집합론의 흥미 대상으로서 유기체의 활동성은 배제됨을 보았다. 집합론의 흥미 대상은 단지 개별자와 집합으로 분류되는 원소들 사이의 포함관계(∈)가 일차적이다. 문제는 동일성의 문제이다. 어떤 경우에 두 원소가 같다고 하는가? x와 y가 개별자인 경우, x=y의 의미는 이미 FOS2-2에서 다루었다. x가 개별자이고 y가 집합인 경우 그 둘의 동일성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그 둘은 당연히 다르다. 그래서 의미 있는 질문은 다음이다. x와 y 둘다 집합인 경우 어느 때 그 둘은 동일하다고 하는가? 2.1. 외연성의 공리(Axiom of Extensionality, FOS, p. 27)): ∀x∀y[∀z((z∈x)↔(z∈y).→.x=y]. 여기서 두 집합의 동일성은 궁극적으로 그것들의 구성원들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의미에서 외연적(extensional)이다. 다시 말해 그 구성원들의 순서 혹은 그 구성원들이 표현되는 방식은 동일성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실례로 {2, 3, 4}, {4, 2, 3}, {1+1, 4-1, 6/2} 모두 동일한 집합이지만, 이 집합들은 표현되는 방식에서는, 즉 내연적(intensional)으로는 다르다. 2.2. Def.: x⊂y≡Df∀z(z∈x.→z∈y). x⊆y는 'x⊂y 또는 x=y'라하면, 외연성의 공리는 "x⊆y이고 y⊆x이면, x=y"임을 뜻한다. 여기서 y가 x의 부분집합이라는 것도 x와 y의 구성원들에 의하여 결정되므로, 위의 논의 1.1, 1.2, 1.3의 맥락과 다르게 이해되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을 개별자로 분류할 때 그의 장기가 그의 부분이 된다고 말하자. 이 경우 그 부분과 전체관계는 위의 정의에 의하여 설명될 수 없다. 공리도식으로부터 발견된 적은 아직까지 없다. # by 취어생 | 2005/10/21 11:42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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