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1일
혜강의 神氣와 혜강 접근법 비판
원문: 혜강의 神氣와 혜강 접근법 비판

혜강 최한기에서 내가 관심 있는 개념은 '손익'(損益), 곧 '상황에 맞도록 조화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나에게 감응이 오지 않는다. 상황윤리 부록으로 '혜강의 손익 개념' 정도를 써볼까 생각 중이지만 실천에 옮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쨌거나 사놓고 묻어둔 혜강의 기측제의 두권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100쪽 정도 읽었는데, 나는 혜강 추종자와 미화자들에게 두 가지 점을 말하고 싶다.

1. 인간 지각에서 환경의 역할을 무시한 심학, 혹은 이(理) 중심의 유학을 혜강이 비판한 것을 과장시켜 그의 사상을 측정량을 다루는 과학의 정신과 모종의 결탁을 함부로 꾀하지 마라.

2. 서구 이원론을 비상식적이라고 비판하면서 혜강을 상식의 대변자로 추켜세우지 마라. 이원론이라는 시대정신 속에서 데카르트가 상식을 구제하려고 한만큼 혜강도 기일원론에서 상식을 구제하려고 했다. 실제 일상경험의 조건을 찾고 그 조건을 충족하는 설명체계를 찾는 방식, 나의 용어로는 '실험적 형이상학'(experimental metaphysics)의 진지한 정신은 데카르트든 혜강이든 둘 다에게 결여되어 있다.

내가 시간이 없으니 이 두 점을 혜강의 신기(神氣) 개념, 곧 그의 기측제의 I(고전국역총서 201)의 1쪽에서 51쪽에 펼쳐진 신기 개념을 중심으로 보이고자 한다. 그리고 이원론 전통에서 일상적 지각경험을 구제하려고 한 데카르트와 흄 등의 정신은 합리론 대 경험론의 도식이 아닌 '대상의 관념화와 관념의 대상화 도식' 속에 잘 드러난다. 이 부분은 과거 99년에 쓰여진 "형이상학 강의록" 제7편인데 첨부파일로 올려놓는다. 본래 나의 혀가 어눌하여 말주변이 없는 데다가 우리말 훈련이 더욱 안 된 상태에서 쓰여진 글이니, 오타와 맞춤법은 각자 잘 알아서 해석하기 바란다. 데카르트와 흄 등의 생각이 어느 정도 일상적 지각경험을 만족하는가를 따지려면, 먼저 그 어떤 철학 이론 없이 일상적 지각경험의 조건을 글자 그대로 일상경험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이에 대한 다섯 가지 조건은 나의 글 "시각경험에 바탕을 둔 당연한 믿음들과 증거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1번과 연관해 혜강의 글이 과학도를 유혹하기 쉬운 구절은 다음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이러한 제규(諸竅)와 제촉(諸觸)이 있어도 만약 기억하고 단서를 찾아 궁구하고 경험하는 신기가 없다면, 평생 동안 여러 번 듣고 자주 보는 사물이라도 매양 처음 대하는 사물과 같을 것이다."(p.40)

'적응 기관으로서 마음'이라는 글을 쓴 나에게 이 구절은 정말 감동 깊다. 이 구절만 보면 혜강의 신기가 마치 '인지기능'(cognitive fuction)처럼 보인다. 제규와 제촉을 감각기관으로 보면, 지각경험에 의한 사고의 제한은 환경 제한을 함축하며, 인간의 판단은 정보 혹은 단서에 근거하기 때문에 기억이 중요하다. 환경이 단순히 합리적 계산 기계로서 두뇌에 대한 자극의 원천(stimuli resource)이 아니라 그러한 계산을 제한하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혜강의 생각은 나에게는 감동을 준다. 기억과 판단을 위한 지체(知體)로서 두뇌가 가정되고, 마음을 환경적응 맥락 속의 두뇌 기능으로 파악한다면, 이 구절은 진화심리학의 새로운 물결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혜강의 현대 인지과학 및 진화심리학의 선구자로 자리 매김 시킬 수 있는가? 답은 간단히 아니다. 그가 말하는 신기는 두뇌 작용을 전제하는 인지기능에 유추하기 힘들다. 신기에서 신(神)은 음양을 예측할 수 없음(陰陽不測之謂身)을 가리킨다고 한다.(역경 계사 상편) 신은 법칙성 혹은 원리로 이해되는 이(理)에서 기인할 수 없음은 성리학의 전통에서 벌써 굳어졌다. 기일원론은 그러한 신을 이(理) 구현의 방해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의 속성으로서 기의 작용으로 본다. 여기에서 통(通)의 개념이 중요해지는데, 이런 세세한 것까지 내가 따질 의무는 없다. 나에게는 별 재미 없는 일이다.

신기가 기의 작용이라면, 모든 것이 기 아닌 것이 없다면, 도대체 사물의 존재 방식과 기능의 측면에서 차이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혜강의 대답은 간단하다. 도가에서 도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개개의 사물의 본성을 뜻하듯, 사람의 신기가 따로 있고, 나무의 신기가 따로 있다. 모든 대상은 氣質의 합성이다. 질도 기에서 나온다는데 어떻게 나오는지는 혜강을 비롯한 모든 동양철학자들에게서 아무런 답을 찾을 수 없다. 사태가 이러하니 기의 신묘한 혹은 예측할 수 없다는 기의 속성으로서 신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은 판단하지만 물건은 아니다. 이러한 차이는 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기에서 온다고 혜강은 말한다.(p.50) 그렇다면 물건의 기와 인간의 기가 다름을 설명해야 한다. 자연계의 이러한 기의 차등성을 혜강 자체에서 충분히 찾기 힘들어 보인다. 어쩌면 산발적인 문단집으로 묶여졌기 때문에 기측제의 자체가 비정합적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대충 짝을 맞춰보자. 인간은 부모로부터 질을 받는다고 혜강은 말한다. 오장육부가 생기고 제규와 제측을 위한 기관이 생겨난다. 이 모든 것은 인간 육체를 이루는 질 속의 기, 곧 육기의 작용이다. 내 말이 아니라 기철학하는 자들의 말이다. 그렇다면 물건의 기와 인간의 기가 다르다는 혜강의 말에서 '기'는 질 혹은 질료 속의 기를 말한다고 봐야한다. 이러한 질료와 연관된 기의 차등성은 외부의 기와 통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불러온다.

인간의 기와 물건의 기를 기능면에서 구분한다면 전자의 신기와 후자의 신기는 다르다. 하지만 둘 다 기의 두 측면일 뿐이며, 따라서 구분되는 두 신기 또한 원초적인 기의 속성으로서 신기의 두 측면일 뿐이다. 혜강은 말한다.

"대체로 이 기는 한 덩어리의 활물이므로 본래부터 순수하고 담박하고 맑은 바탕을 가지고 있다. 비록 소리와 빛과 냄새와 맛에 따라 변하더라도 그 본성만은 변하지 않는다. 이에 그 전체의 무한한 공용(功用)의 덕을 총괄하려 신이라 한다."(p.43)

이렇게 신을 기의 공용으로서 규정할 때 신은 모든 현상의 원초적 활성 기운의 성질이다. 그래서 혜강은 "기는 천지 용사의 바탕이요, 신은 기의 덕이다"라고 말한다.(p.46) 이러한 기의 전일적인 신은 물건과 인간의 질료적 차이와 연관된 각각의 기와 연관될 때 물건의 신기와 인간의 신기로 나타난다. 그리고 인간의 신기가 바로 지각경험에 근거한 기억과 판단이다. 이러한 신기는 육기가 제규와 제촉을 통해 외기와 감응하는 것이기에 혜강에 있어서 판단은 합리적 계산의 결과가 아니라 일종의 체득(體得)이다.

"신기를 확실히 체득한 뒤에야 바야흐로 하늘과 사람의 서로 통하는 것이 진실로 여기에 말미 암고, 힘을 오로지하여 공부한 것도 여기에 달려 있으며, 지각이 가야 할 바른 길과 따라야 할 바른 법도가 곡진히 드러나고 두루 통하여 곳곳에 모두 사무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p.47)

지식을 얻는 것을 체득으로 보기 때문에, 지각과 지식의 엄격한 구분은 없다. 이 점 때문에 몸철학인지 뭔지를 하는 사람들이 서구철학 전통의 이단아로서 메를로 퐁티 등을 몰아세워 혜강과 연결시키면서 분석 없는 모호한 화두의 글들을 토해내고 있다. 앎에서 지식의 강조가 마치 합리성에 대한 상식의 승리인 것처럼 미화된다.

그러나 무엇이 상식의 승리란 말인가? 행위와 지식의 엄격한 구분이 비상식적이라고 하자. 앎이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체득의 일종이라고 하자. 그렇다고 하여 혜강의 철학이 상식을 구제한 것인가? 전혀 아니다. 언급된 이분법을 부정했다고 상식을 구제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혜강이 그렇게 구제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아니다. 상식은 여러 시대정신 속에 포섭될 수 있다.혜강은 유학 비판을 통해 일어난 일종의 19세기 시대정신 속에서 상식을 구하자고 했을 뿐이며, 그 결과 감각기관을 통한 지각경험에 대한 그의 설명은 그의 선조들만큼이나 알맹이가 없다. 지식과 행위의 엄격한 이분법에서 탈피가 혜강의 강점이고, 그렇지 못한 데카르트는 이 점에서 비상식적이라고 하자. 하지만 지각경험의 일상성을 구제하려는 측면에서는 데카르트가 더욱 치밀하다. 내 말은 특정 시대정신 속에서 상식을 구제하려는 노력은 그 시대정신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각 시대정신의 성격에 따라 상식의 이런 측면은 잘 구제하지만 또 다른 측면은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 일상적 지각경험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상식에 근거해 찾아보려고 했는가? 가급적 시대정신에 매몰되지 않은 채 말이다. 거의 없다. 아무튼 이 짧은 글에서 나는 두 가지, 곧 혜강을 무턱대고 과학의 정신과 막 바로 연결시키려는 행위와 혜강을 서구사상보다 더욱 상식적임을 주장하는 것이 명확한 분석 없이는 근거 없는 선입관에 기인한 것임을 보이고자 했다.

"판단은 당연히 이성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지각하지 못한 것에 관해서는 결코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지각된 것을 참이라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의지 또한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것을 위해서 (적어도 어떤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결여되지 않은(integra) 완전한(omnimoda) 지각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많은 경우에 애매 모호하게 인식한 것을 참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데카르트(원석영 옮김), "철학의 원리", p.32)
by 취어생 | 2005/10/21 11:44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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