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1일
클라우스 마인쩌(Klaus Mainzer): 「철학자와 생명」
원문: 클라우스 마인쩌(Klaus Mainzer): 「철학자와 생명」

착한왕 요약

클라우스 마인쩌(Klaus Mainzer): 「철학자와 생명」("Die Philosophen und das Leben")
출처: E.P. Fischer, K. Mainzer(Ed.): Die Fragen nach dem Leben(생명이란), Muenchen: R. Piper 1990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는 오늘날 단순히 생물학, 화학 및 물리학만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법학 및 인류학 등등으로 확장된 문맥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유전공학의 응용문제만을 고려해봐도 확실하다. 더욱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어떻게 답하는가는 세상에 대한 그림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또한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고대와 중세의 세계관: 유기체로서의 생명

고대의 자연철학에서도 이미 신화를 제거하고 자연을 설명하려는 태도가 등장한다. 물론 우리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가급적 그 당시의 관점에서 이해할 때 고대인과 중세인의 많은 가설들이 불필요한(ad hoc) 가설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자연을 인격화된 악마나 신에 의거하지 않고 설명하려는 태도는 이미 밀레토스의 탈레스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는 생명의 원천을 물로보았다. 심지어 엠페도클레스로의 4원소설로부터 시작해 데모크리투스에 의해 정착된 원자설은 환원주의의 사고를 연상케 한다. 죽은 물질이든 살은 물질이든 궁극적으로 진공 속을 운동하고 있는 원자들의 특정 결합방식이라는 점. 결국 생명현상도 보이지 않는 입자들의 실체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점.

유기체로서 생명의 관점은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강하게 나타나며, 중세까지 이어진다. 그는 생명현상에 대한 원자론적 환원과 플라톤식의 수학화를 거부한다. 그에게 있어서 수학화가 가능한 영역은 천상계의 원운동밖에 없다. 생명현상의 본질은 외부의 영향 없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율성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생명은 영혼을 갖고있고, 이 점은 생명에게는 자기 조직화할 수 있는 힘(entelechie)를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생명의 자기 조직화는 무작위적이 아니라, 특정 목적에 의해 기능적으로 조절된다. 이러한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은 '생기론적 목적론'이라고 불릴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학의 측면에선 철저히 본질주의를 따랐다면, 계통발생학에선 철저히 목적론적이고 연속적인 진화의 개념을 따랐다. 자연에서 죽은 물질로부터 생명의 고차원적인 단계는 연속적인 스펙트럼과 같이 발생하기 때문에, 죽음과 삶, 그리고 유기적인 것과 무기적인 것 사이의 완벽한 경계란 없다(scala naturae, Historia animalium 588b 4). 아리스토텔레스의 유기적 자연관은 후대 갈렌(Galenus)의 의학 및 중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 1193-1280)에게 영향을 미쳤다. 마그누스는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을 기독교와 결합시키려고 했으며, 그 과정에서 건강한 삶은 건강한 환경을 요구함을 주장했다. 특히 깨끗한 공기를 강조. 알베르투스 사상의 중심은 인간을 몸과 정신의 전체로 본데 있고, 조화로운 삶은 정기적인 식사로부터 건강한 섹스까지 포함한다.


근대 17-18세기 역학적 세계관: 기계생명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체에 대한 운동개념은 갈릴레이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았다. 기하학과 역학이 자연현상을 설명하는데 기본이자 충분한 것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신이 시계 제작자라면, 거대한 자연시계는 그가 설계한 방식으로 정확히 움직일 것이다. 생명현상에 대한 역학적인 설명이 많이 시도되었는데, 데카르트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하베이(Harveys)의 혈관계가 알려진 후 데카르트는 심장을 펌프기계로, 동시에 그 펌프기능에 의한 열 발생을 생명의 원천으로 간주했다. 해부학의 데카르트적 원리란 한 구조를 잘게 부수고, 그것들의 기능을 기하학과 역학의 원리에 의해 설명하는 것이다. 생명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기하학의 중요성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이자 생리학자였던 보렐리(G.A. Borelli, 1608-1679)의 주장에서 잘 드러난다:

"과학적 지식이란 전적으로 기하학에 의거해야 한다. 신이 동물의 유기적인 조직을 창조할 때 기하학을 사용한 것은 틀림이 없다. ... 왜냐하면 인간이 동물의 세계에서 신탁을 읽고 해석하려고 할 때 유일하고 적합한 학문은 오로지 기하학이기 때문이다"(De motu animalium)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기 위해 데카르트는 적어도 영혼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반면에 라메트리(Lamettrie)는 인간 또한 동물과 마찬가지로 영혼 없는 자동기계이며, 동물과 인간 사이에는 단지 복잡성의 차이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L'homme machine, 1747). 동시에 이 역학적 세계관 속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분적으로 살아 남는다. 특히 라이프니쯔에 의해.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순차적인 질서를 인정했다. 모나드부터 복잡한 유기체 사이에는 연속적인 단계의 발전이 있다. 곧 물체부터 영혼이 깃들게 될 때까지. 라이프니쯔로부터 자극받은 스위스의 동물학자 본넷(C. Bonnet)은 한 구조가 얼마나 유기체적인가에 따라 구조의 복잡성을 측정하려고 했다.

기하학적이고 역학적인 세계관은 18세기 후반, 특히 독일의 낭만주의 시대 크게 비판을 받게된다. 시작은 칸트였다. 기계적인 설명을 생물에 적용할 때 나타나는 한계를 칸트는 직감했다. 왜냐하면 생명의 특징은 스스로 조직화하는 힘 혹은 재생산하는 힘을 갖는데, 이 힘이 역학적 운동법칙에 의해 절대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판단력 비판』). 역학론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의 물결은 괴테 및 쉘링에게 이어졌다. 쉘링은 생명의 유기적인 특징과 재생산, 곧 번식능력을 강조하는 가운데, 생명과 기계의 명확한 경계짓기를 시도했다. 한편 독일 낭만주의에 영향을 받은 쮸리리히 대학의 의사였던 오켄(L. Oken, 1779-1851)은 무생물로부터 고등동물까지의 발전단계를 전자기력과 화학에 의한 합성과정으로 제안하였다(Lehrbuch der Naturphilosophie, Jena 1831). 생명현상의 특징으로서 자율성 혹은 자기 조직화라는 개념은 다시 부활했지만, 그 당시에는 순전히 사변에 의한 가정으로 남았다.


19세기 다윈의 시대: 진화로서의 생명

자연선택과 유전적 변이에 바탕을 둔 다윈의 진화론은 19세기에 탄생했고, 다윈 역시 그 당시 시대정신에 영향을 받았다. (다윈 시대에 그와 무관하게 멜더스의 인구론이 집필된 것을 상기하자.) 특히 19세기는 열역학이 산업혁명으로 이어지게 되는 시기이기도하다. 볼츠만(L. Boltzmann, 1844-1909)은 화학의 원자가설을 바탕으로 열역학을 통계적이고 분자적인 모델로 정착시켰다. 그는 진화론과 기존의 물리학 사이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전자의 법칙들은 대칭적 혹은 가역적인 반면에, 진화론은 비가역적이다. 실제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생물현상은 비가역적이다. 이러한 비가역성은 열역학 제 2법칙에 의거한 엔트로피 법칙으로 나타난다. 볼츠만은 엔트로피 법칙이 진화론과 양립할 수 있음을 강조했고, 광합성의 연구를 통해 생명의 특징으로서 분자적인 번식(autocatalysis)과 에너지 교환(metabolism)을 강조했다.

볼츠만은 진화론을 열역학적으로 해석한 아이디어를 신경계 및 의식의 영역까지 확장하려고 노력했다:

"뇌란 하나의 기관으로서 세계에 대한 그림을 창출한다. 다윈의 이론에 따라 그러한 그림의 커다란 이용가치란 아주 발달한 인간이라는 종의 유지에 있다. ..."("Ueber die Frage nach der objektiven Existenz der Vorgaenge in der unbelebten Natur" Anm. 14, pp. 94-119).

볼츠만은 또한 개념과 사고능력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모든 사람이 시간과 공간 및 인과라는 범주 속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전적 코드에 의해 설명하려는 시도와 유사하다. 사고를 가능케 해주는 조건으로서 칸트의 범주적 법칙이 진화론의 적자생존의 메카니즘 속에서 새로이 해석되는 것이다. 볼츠만 인간사회의 발전을 생물학적 진화에 의거해 설명하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기술과학 시대에 있어서 생명

지금 현대 분명히 환원론적 사고가 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환원론이 현대를 대표한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 엄격히 말해 20, 30년대만 하더라도, 환원주의와 생기론적 사유가 공존했었다. 물리학자 하이틀러(W. Heitler), 생물학자 드리쉬(A. Driesch), 철학자 화이트헤드와 베르그송 등등의 사유를 대비해보면 쉬울 것이다.

환원론의 아버지 격인 역학론적 세계관과 양자역학까지 관통하는 사실은 시간의 가역성이다. 이 점은 수식상에서 대칭성, 철학적으론 결정론으로 나타나는데, 슈뢰딩어의 방정식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측정에 있어서 불확실성이 있다고 하나, 관측 이전의 양자세계는 여전히 결정론이다. 생물현상을 설명하는데 필요한 비가역성은 19세기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 제공되었다. 볼츠만은 진화론을 통계적인 열역학의 법칙과 모순되지 않음을 보이는데는 성공했지, 결코 생명현상을 밝힌 것은 아니다.

분자생물학의 태동과정에서 생명 및 화학현상을 물리법칙으로 환원시키려는 노력이 강하게 일어났다. 분자영역의 양자화학의 태동은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분자영역에 대응할 수 있는 슈뢰딩어 방정식이 발견되었다(Heitler). 그러나 이로 인해 화학이 물리학으로 환원된 것은 절대 아니다. 분자에 있어서 전자의 회전주기 및 궤도는 양자상관관계(quantum corelations)에 의해 설명되는데, 이 과정에서 파울리의 원리가 필요하다. 이 원리에 의하면, 한 원자의 모든 전자들은 다 구별 불가능하다. 반면에 화학자들은 분자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핵 주위의 서로 명확히 구별되는 궤도를 여전히 가정한다. 화학에 있어서 이러한 고전적인 사고는 보른과 오펜하이머에 의해 새로이 제공된바 있다. 그 이외에 슈뢰딩어 방정식으로 예측할 수 없는 많은 복잡한 분자의 성격이 밝혀졌다. 환원 대신 보어는 물리화학의 법칙과 생물학의 법칙 사이의 상보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발상은 19세기 쉘링이 생물현상을 자연계에 포함하는 한편, 물리현상에 기계론적 해석을 인정할 목적으로 스콜라전통으로부터 빌려온 포괄적 혹은 가능적 자연(natura naturans)과 인간의 실험과 인식조건에 종속되는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사이의 구별에 대응할 수 있다.

반면에 현대 체계이론(system theory)은 환원도, 상보성도 강조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분야의 통합의 의미하며, 각각은 복잡성에 있어서 차이를 갖는다. 생명체계는 개방계이기 때문에, 환경에서 에너지교환작용에 있어 열역학적인 평형상태에 종속되지 않는다. 볼츠만은 그러한 평형상태를 확실한 것으로 전제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전제는 하켄(H. Haken)과 프리고진(I. Prigogine)에 의해 위협받게 된다. 유기체의 새로운 질서란 과거 상태가 불안정할 때 하부의 미세구조의 작용에 의해 거시적인 질서상태가 새로이 조직되는 것이며, 하부의 미세구조가 거시구조의 질서상태로 전이하는 과정은 비평형적인 동시에 비선형적이다. 이러한 페이스전이는 비선형적인 진화모델에서 나타나는데, 이를 만프레드 아이겐(M. Eigen)이 어느정도 보여주었다.

원자, 분자 및 화학과 생명현상의 자기 조직화에서 나타나는 비선형성은 미립자들의 공동협력에 의한 전체계의 전이로 나타나기 때문에, 역으로 전체계는 각 부분을 잘게 나누어 분석하는 방법에 의해 설명될 수 없다. 모든 자연의 체계가 그렇다면, 더 이상 완전한 죽은 물질과 살은 물질의 정확한 경계란 없다. 상대적인 복잡성의 차이만이 의미를 가질 뿐이다. 생명현상 뿐만 아니라 사회현상 또한 복잡한 개방계라면, 즉 그것의 하부구조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나타나는 새로운 질서라면, 사회현상이 결코 사회 생물학 등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은 없다. 마찬가지로 하부 물리화학의 작용에 의해 비선형적으로 나타나는 생명현상이 물리학이나 화학에 의해 환원적으로 설명될 가능성은 없다. 알고 보면 생물, 무생물 그리고 생명, 죽음 사이를 완전히 구별해주는 척도란 체계이론 속에선 사라지고, 복잡성에 의한 상대적 차이만 있을 뿐이다.
by 취어생 | 2005/10/21 11:51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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