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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1일
원문: 과학사와 20세기 과학철학
진화생물학의 담론이 도입되면서 현대 과학철학은 전환기를 맞고있다. 지금까지 20세기 과학철학의 주된 관심사는 물리학이었다. 17세기 과학혁명기이래 물리학 그리고 물리학의 수학적 방법론은 서양 철학의 발달 과정 그 자체와 밀접하게 맞물려있다. 고전역학과 유클리드 기하학의 체계는 객관성을 함축한 과학적 지식을 대표한다고 믿어졌다. 과학철학의 조상인 근대 자연철학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과학적 지식의 가능성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 상대성이론 및 양자역학의 출현은 그러한 정당화 작업에 담긴 합리성 개념에 의심의 불씨를 던졌다. 근대 자연철학의 한계가 철학자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았지만, 19세기 중엽에 형성된 과학의 다양성과 역사 속의 역동성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 대신 과학의 세속화 여정, 곧 과학과 종교의 분리 여정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과학의 세속화 여정은 형이상학이 과학과 양립 불가능하다는 관점으로 단순화되었다. 과학 작업과 발견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형이상학적 지침서 개념, 실례로 대칭성, 보존량 개념 등은 철학자의 담론에서 제외되었다. 과학자에게 과학이 경험적이라는 말은 경험을 통합 설명한다는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지만, 철학에서 그 말은 관찰 영역 속에 구속된 과학을 의미한다. 과학은 관찰 영역 속에서 다른 분과와 분리된 자율성을 획득했다. 하지만 이 자율성은 오로지 철학에서만 의미 있을 뿐이다. 과학적 지식의 가능성에 대한 과거 자연철학의 담론은 과학적인 것과 과학적이지 않는 것의 경계짓기 담론으로 전환되었고, 실제 과학 이론의 역사적 형성 과정과 발견의 기제는 과학철학의 주제가 되지 못했다. 이 점은 20세기 귀납주의와 귀납주의의 비판자로 자처하는 포퍼의 반증주의 둘 다 관통한다. 과학철학의 한 지류인 과학적 논증에 관한 담론은 과학적인 것과 과학적이지 않는 것의 엄격한 구분을 전제하고 이루어졌다. 과학적인 것이 관찰 영역을 축으로 결정되므로 관찰 불가능한 존재자들에 대한 논쟁은 필연적 결과였다. 과학의 목적이 다른 분과와 구별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과학 이론의 역사적 형성 과정과 발견은 아니다. 과학적 논증과 과학적 실재론에 관한 담론에서 과학 발달의 역사적 역동성은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과학의 이론은 명제들의 추론 체계로 여겨졌고 실험과의 관계 속에서 주로 다루어졌다. 자연의 사실은 이런 검증의 토대로 전제되었고, 이러한 전제에 대한 반발은 과학적 실재론 논쟁에 불을 붙였다. 과학사는 그저 철학자의 특정 입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과학철학에서 과학 이론을 역사 속에서 발달하고 성장하는 체계로 파악하는 관점은 쿤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 그러나 쿤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과학의 세속화 여정의 관점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과학적인 것의 경계짓기는 인식론과 존재론의 담론에서 벗어나 과학 발달의 보편적 구조를 제공하는 담론 속에 정착한다. 이론에 대한 사실의 객관적이고 독립적 지위가 위협받은 이후, 과학의 발달이 우리를 진리로 유도한다는 관점은 통용될 수 없게 되었다. 과학 발달에 함축된 진보는 객관성과 진리 추구의 미덕을 전제하지 않고 구제되어야 한다는 성급한 결론이 철학자들에게 강박관념으로 자리잡았다. 쿤도 예외가 아니다. 쿤은 과학 이론의 법칙과 실험 방법 등을 과학자 집단의 사회적 수용 방식으로 취급했으며, 그러한 법칙과 실험 방법을 포함한 패러다임은 과학자들에게 풀어야 할 문제와 해답을 제공해 준다. 패러다임에 예외가 되는 사항에 관심을 갖는 과학자는 현명하지 못하다. 패러다임의 수명이 다해갈 때, 곧 그것이 더 이상 흥미로운 문제와 해답을 제공해 주지 못할 때 비로소 과학자들은 반례와 설명되지 않았던 현상에 진정한 관심을 갖는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착시키는 과학혁명이 도래하면, 과거 패러다임은 역사 속에 사장된다. 패러다임에 의한 연구 과정으로서 정상과학과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는 과학혁명 사이에는 휴식이 자리잡는다. 이러한 과학 발달에 과한 쿤의 관점은 새로운 이론의 개념과 과거 이론의 개념이 서로 비교 불가능하다는 공약 불가능성의 논제를 함축한다. 철학자들 일부는 공약 불가능성의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에 고심한 반면, 일부는 과학 자체를 사회적 구성물로 간주하는 시도에 쿤을 끌어들였다. 급기야 쿤을 시점으로 쿤 이전의 과학철학과 쿤 이후의 과학철학을 구분하는 유행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들 모두에게 관통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신들의 이론 혹은 관점을 옹호하기 위해 과학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과학사의 규범적 사용은 과학 이론 형성의 역사적 인지경로를 무시한다. 과학 발달에 대한 쿤의 관점이 규범적 과학철학으로 인식되면서, 쿤에 반하는 과학사의 사례와 과학자들의 발견 과정이 분석되었다. 과학의 특정 분과를 관통하는 주제 찾기, 실험에서 조작의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과학적 실재론을 구제하는 시도 그리고 과학 발달 과정을 선택과 변이라는 진화론의 개념에 유추해 풀어내는 시도가 일어났다. 특히 진화생물학의 형성 과정은 여러 이질적인 패러다임의 공시적 그리고 통시적 합성이기 때문에 패러다임 전환에 의한 쿤의 구상에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과학혁명의 도식은 역사를 초월한 보편적인 것이다. 과학 이론의 형성과 발달은 단지 그 도식의 예화에 불과하다. 그 도식은 주로 물리학사에 호소하고 있다. 과학 발달에 대한 쿤의 관점을 강하게 반박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이 역사에 의존한 방식, 곧 물리학의 형성과 발달의 역사적 인지경로를 추적해야 한다. 쿤과 관련해 적어도 세 가지 문제가 다루어져야 한다. 첫째, 과연 급격한 세계관의 변화를 수반한 새로운 이론은 과거의 이론과 개념적으로 단절된 것인가? 과학과 형이상학이 서로 양립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지나치게 단순화된 과학의 세속화 과정이 20세기 철학자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았고, 쿤도 예외가 아니다. 급격한 세계관의 변화와 함께 뉴턴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한 쿤의 분석은 수식과 경험적 내용으로 이루어진 이론의 표면구조에 한정되어 있다. 이론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개념틀, 곧 이론의 경험적 내용을 제한하고 발견에 지침서 역할을 하는 개념들의 역할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한 개념들로 구성된 이론의 심층구조와 표면구조는 일반적으로 정합적인 체계가 아니다. 실례로 뉴턴역학의 표면구조는 명백히 중력현상을 기술할 수 있지만, 수식적인 표면구조의 형성에 작용한 심층구조는 접촉에 의한 힘 전파만을 인정하는 데카르트의 역학적 세계관에 크게 의존한다. 이러한 이론의 표면구조와 심층구조의 비정합성은 자연철학자와 과학자들에게 의식되었고 새로운 발견의 역사적 추진제였다. 뉴턴에게 신비한 힘이었던 중력을 4차원 시공간 속의 자유 낙하하는 물체의 가속효과와 연관시킴으로써 아인슈타인은 중력을 운동현상으로 정착시켰고, 이점은 뉴턴이 바라던 이상이기도 하다. 뉴턴역학의 비정합성을 제거해나간 역사적 과정 속에서 상대성이론을 바라볼 때 물질의 동질성 그리고 보존량이라는 지침서 개념이 둘을 관통한다. 두 이론이 개념적으로 단절된 그러한 것은 절대 아니다. 둘째, 과연 상대성이론은 혁명에 비유될 수 있는 일종의 도약인가? 과학 발달에 대한 쿤의 관점을 진화론에 유추하면, 그것은 돌연변이에 의한 도약 진화설에 가깝다. 다윈 진화론과 달리 도약 진화설에서는 생물계에 계속 일어나는 변이의 점진적 축적은 의미가 없다. 뉴턴역학에서 상대성이론에 이르는 역사적 인지경로는 그러한 도약 진화설에 유추될 수 없다. 그 인지경로는 철학적으로는 힘이 접촉, 실례로 충돌에 의해서만 전파된다는 역학적 세계관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은 충돌 과정에서 물체와 물질 그리고 운동의 원인을 다룬 개체 중심 접근법, 여러 유사한 자연 현상을 통합 표현할 수 있는 수학적 방법론을 개선한 18세기 형식주의 접근법, 보존량이자 교환량인 에너지의 존재와 힘과 에너지의 구별을 끌어낸 장이론 접근법 그리고 전기, 자기, 마찰 등 자연의 모든 현상 중에서 보존되는 실체로서 에너지를 전제한 에너지 일원론의 4단계로 구성된다. 이 4단계의 구성은 보존량이라는 지침서 개념의 점진적 변이 과정에 유추되기 때문에, 뉴턴역학에서 상대성이론에 이르는 여정은 역사적으로 단절된 도약이 아니다. 또한 그 여정은 과학의 세속화에 대한 착각을 고쳐준다. 과학의 세속화는 과학 발견과 작업의 배후에서 기능하는 지침서 개념들이 종교적 교리에서 독립한 것임을 의미하지 결코 과학과 형이상학의 양립 불가능성을 함축하지 않는다. 셋째, 쿤은 과학의 진보를 인정하는가? 이 문제는 하나의 딜레마를 만들어 낸다. 과학의 진보는 진리와 객관성 추구라는 과학의 미덕을 전제하는 반면, 그러한 미덕을 문제 풀기의 유용성으로 대체시킨 쿤은 여전히 진보의 옹호자로 자처한다. 쿤은 소박한 진리 수렴론의 거부를 떠나서 진리언급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쿤의 태도는 진리 수렴론에 대한 지나친 과민 반응이다. 진리 수렴론의 거부가 이론 선택에서 진리를 언급하는 방식 자체를 가로막을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진리언급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인간 경험을 초월한 형상계와 같은 존재론적 틀에 의거해 진리를 언급하는 방식, 경험을 가능케 하는 선험적 조건에 근거해 진리를 언급하는 방식 그리고 과거, 현재 및 미래 시점에서 진리를 언급하는 방식이다. 과거 자연철학 전통에서 유행했던 존재론적 틀과 선험적 인식론의 틀에 근거해 진리를 언급하는 방식은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20세기 과학철학에서 논리실증주의의 검증주의 의미론에 함축된 현재 시점의 진리언급 방식과 포퍼 식의 미래 시점의 진리언급 방식이 논쟁되었다. 양자에는 이론에 대한 관찰 혹은 사실의 중립성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한 중립성이 위협받자 쿤을 위시해 여러 철학자들은 이론 선택에서 진리언급마저 유용성 개념으로 대체시켰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한 것은 과거 시점에 근거해 진리를 언급하는 방식이다. 관찰이 제 아무리 이론에 의존적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뉴턴이 했던 방식으로 실험을 할 수 있다. 과학의 사실들은 재구성 가능하거나 화석처럼 현존하는 역사적 사실들이다. 이론과 실험을 평가할 때 그 둘은 한 쌍을 이루며, 역사적 사실로서 재구성 가능한 사실들은 이론의 증거로 봉사한다. 이러한 평가 방식이 현재 시점이 아니라 과거 시점에서 이루어진다면, 과거 이론은 유용성이 적다는 이유로 사장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 시점의 기준으로 문제 해결에서 유용한 현재 이론은 좀 더 참으로 여겨진다. 진리언급의 시점이 과거가 된다면, 과학의 진보 논쟁에서 객관성과 진리 추구라는 과학의 미덕이 유용성으로 대체될 이유가 없다. 실제 물리학이 역사에 의존한 방식, 곧 물리학 형성의 역사적 인지경로를 있는 그대로 분석한다면, 과학 발달에 대한 쿤의 관점은 틀린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분석은 쿤이 의지한 물리학의 발견 사례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그 어떠한 비판보다도 쿤에 대한 가장 강한 비판이다. 더욱이 과학사에서 물리학사 하나만 보더라도, 그 역사는 다양성의 증가를 보여준다. 현재 양자역학 등을 둘러 싼 과학자들의 혼란은 과거와 달리 이론 형성에 도그마로 작용하는 단일 개념틀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혼란은 과학이 문제 해결의 유용한 도구일 뿐이라는 결론을 전제하지 않는다. 또한 과학사가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도식의 보기에 불과하다면, 과학자는 패러다임의 운반체에 불과하다. 이점은 과학자는 능동적 역사 참가자가 될 수 없다는 과학자에게 매우 슬픈 결론을 함축한다. 사실과 전혀 다른 이런 결론은 역으로 과학자 집단 스스로 철학적인 것을 논할 수 있다는 과학의 세속화가 얼마나 잘못 와전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한 와전 속에서 일반인들은 과학을 그저 도구로 여겼고, 철학자들은 다른 분과와 독립된 과학적인 것 자체의 본질을 찾았던 것이다. 과학의 역사 의존성을 인정할 때 과학 발달의 보편적이고 규범적 구조는 포기되어야 한다. 이것은 과학철학의 종말을 의미하는가? 과학의 역사 의존성을 인정하는 것이 과학철학이 과학사에 종속됨을 함축한다면 그렇다. 그러나 그러한 종속은 걱정일 뿐이다. 우리는 물리학이 역사에 의존한 방식과 생물학이 역사에 의존한 방식의 차이 속에서 자연 법칙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열 수 있다. 19세기 중엽 이후 현재에 이르는 과학의 다양성은 여러 이질적인 세계관을 수반하기 때문에, 자연과 표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요구된다. 과학적인 별도의 합리성의 포기는 문화와 역사라는 환경 속에서 다양한 분과 사이의 상호작용 방식에 관심의 축을 이동시킨다. 이러한 점들은 지금까지 과학철학에서 깊이 다루어지지 않은 많은 문제들 중에 일부일 뿐이다. 과학의 역사 의존성을 인정할 때 과학 이론 형성의 실제 역사적 인지경로는 과학철학의 주된 소재가 된다. 과학사는 철학자의 특정 관점을 옹호하는 수단이 될 수 없으며, 그렇다고 하여 과학철학이 과학사에 종속되는 것은 아니다. # by 취어생 | 2005/10/21 12:00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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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 취한 사람
손이 두뇌를 이해하고 두뇌가 손의 움직임을 느낀다. 그 때 과학이 시작된다.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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