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1일
19세기 과학의 다양성과 소박한 객관성
원문: 19세기 과학의 다양성과 소박한 객관성

19세기 과학의 다양성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기회와 확률 개념이 이론 발견의 분석적 도구(analytical tools)로 정착하면서 과학자들의 마음을 절대적 확실성 추구에서 거리를 두게 만든 확률혁명(probabilistic revolution)이다. 멘델 유전학, 볼츠만과 맥스웰의 통계역학 그리고 집단유전학(population genetics)의 설명을 위해 피어슨(K. Pearson)에 의해 토대가 마련된 통계학 등을 들 수 있다. 사실 용어 ‘science'도 19세기 휴월에 의해 탄생했고, 확률혁명은 과학을 단수가 아닌 복수형 ’sciences'로 만들었다. 확률혁명과 함께 나타난 과학의 분과 다양성이 그 두 번째이다. 분과 다양성은 과학에 여러 이질적인 세계관을 수반했고, 법칙과 가설을 이해하는 방식의 다양성을 낳았다. 물리학의 법칙은 과거 학자들이 ‘자연법칙’이라고 부른 것으로서 보편성과 불변성을 추구한다. 중력법칙은 우주 어디서나 동일하게 작용하고, 그것이 정말 자연법칙이라면 깨어질 수 없다고 여겨진다. 반면에 진화론의 자연선택 가설은 유효한 설명 영역만 있다면 결코 반증되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 부분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일부 생물철학자들, 대표적으로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루스(M. Ruse) 등은 자연선택을 마치 진화의 주요 기제인 것처럼 과장하지만, 실제 진화론의 역사는 다르다. 그것은 오히려 자연선택 가설의 설명 영역을 좁히면서 동시에 자연선택 가설을 견고히 하는 과정이다. 주로 개체에 작용하는 자연선택에 영향을 받는 형질은 암수구별을 전제하지 않는다. 당신의 성기를 관찰해보라. 양성이 아니라 하나의 성에만 나타나는 성기의 신체적 형질과 기능은 개체 증식 적합성으로 측정되는 적응도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암컷을 둘러싼 수컷의 경쟁과 암컷의 수컷 선택 기제와 관련된다. 또 자연선택은 미시세계도 거시세계도 아닌 일상적 영역에서 가정된 것이다. 자연선택이 우주 진화의 기제라는 증거도 없으며, 그것이 그대로 분자세계에 적용된다는 증거도 없다. 현대 분자생물학의 발견 중 하나는 분자 차원에서 일어나는 숙주와 기생충 간의 직접적인 유전자 교환이라든가 돌연변이는 자연선택에 의해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 현상의 특정 영역에 고유한 기제를 가정하는 것은 19세기 이전 확실성 추구의 시대정신 속에서는 금기였다.

과학의 다양성을 가로막았던 또 하나의 장벽은 지식체계의 고정된 위계질서에 대한 신념이었다. 이 신념은 그저 기예 혹은 이론의 검증 수단으로만 여겨진 실험에 대한 인식을 낳았다. 19세기 과학의 다양성을 불러온 세 번째 요인은 이러한 실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었고, 19세기 말 어느 대학이나 오늘날 의미의 실험실(Lab)을 갖추게 되었다. 실험은 단순한 이론의 검증 수단이 아니라 이론 ‘발견의 도구’이자 이론과 상호작용을 통해 과학을 진보시킨다. 이점은 2차 대전 전의 과학자와 과학사가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실험이 발견의 도구라는 인식은 과학철학의 형성에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쿤 이후 이론에 대한 사실의 중립성이 포기된 이후 실험의 이론 의존성이 강조되지만, 이론 선택의 결정적 실험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논쟁이 대부분이다. 실험의 이론 의존성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실험 도구 설계에 검증될 가설을 포함하는 이론이 그 설계에 개입한다는 말인가? 실험 행위에 이론이 개입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실험 도구에 의해 검증된 것, 혹은 맥스웰의 표현으로 그렇게 과학자에 의해 느껴진 것들의 해석에 이론이 개입한다는 뜻인가?

만약 이론의 응용으로서 실험도구가 설계되었다면 과학은 진보를 할 수 없다. 19세기 전자기학의 급속한 발견은 실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디자인 설계에 바탕을 둔 공학기술에 큰 덕을 봤다. 전자기학 발전에 기여한 여러 도구, 실례로 수동식으로 전기를 발생시키는 장치(dynamo)는 물리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용적 목적으로 탄생했다. 실험 도구의 설계가 단순한 이론의 응용이 아니기 때문에 실험 행위에 이론이 개입하는 정도는 항상 제한적이다. 실험에 의해 산출된 사실들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데 이론이 개입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검증이 아니다. 이론이 ‘표상’이라면 실험은 ‘개입’(intervention)이다. 이론에 부합하지 않은 실험 결과라도, 실험은 직접 대상을 다루기 때문에 자연의 객관성은 위협받지 않는다. 어떤 실험은 아예 기존 이론을 깨기 위해 고의적으로 설계되기도 한다. 실험 결과의 이론적 평가가 가능하다면, 이론은 확고해지지만, 아니라면 수정이 요구된다. 실험 자체가 발견을 유도한다. 과학철학의 맛을 본 사람들은 일상적 대상뿐만 아니라 전자(electrons)처럼 과찰 불가능한 존재한다는 과학적 실재론(scientific realism)을 놓고 벌어진 찬반론을 알 것이다. “전자는 쏠 수 있기에 존재한다”는 ‘중재’의 개념을 빌려 핵킹(I. Hacking)과 카트라이트(N. Cartwright) 부부가 ‘약한 실재론’(weak realism)이라는 이름아래 과학적 실재론을 구제하려고 노력한 사실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뭐가 새롭단 말인가. 과학철학 논쟁에 현장 과학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심성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전혀 공감할 수 없거나 관심을 끌 수 없는 얘기들이 오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험의 성격에 대한 헬름홀츠의 멋있는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탐구해야 한다. (우리는 사물 그자체를 연구해야 한다. 혹은 우리는 사물 그 자체를 -연구대상으로서- 공격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떤 무리의) 학자들이 맞닥뜨렸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새롭고 독특한 난제를 제공한다. 반면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가진 거의 모든 시간과 노동이 연구의 목적과는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인 부차적인 문제들에 의해 소모되고 있다.”

이 인용문에서 ‘부차적인 것’은 무엇을 뜻할까? 실험이 아니라 실험에서 발견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이론 수정 작업과 대안 설계를 뜻한다. 헬름홀츠가 물 자체를 공격한다는 은유는 이론에 종속되지 않은 그리고 이론의 진위여부와 상관없는 디자인으로서 사물을 다룰 수 있는 ‘실험’을 뜻한다. 헬름홀츠에게 실험은 존재의 객관성을 보장하고 발견으로 유도하는 도구의 일종이다. 과학의 진보는 이론과 실험이라는 상호작용에 의해 급진전 했으며 다양해졌다.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도 이론과 실험의 상호작용은 과학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소박한 객관성’(naive objectivity)을 제공해준다.

소박한 객관성: 과학의 다양성 속에서 과학의 가설은 자체의 고유한 설명 영역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론 형성과 수정에 계속 개입한다. 자연선택 가설이 좋은 사례가 된다. 실험 사실들은 동일한 조건아래 반복 생산된다는 점에서 그냥 사실들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들’이다. 실험 사실들은 이론 검증의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이론 평가의 기반이다. 특정 실험 사실들이 이론의 증거로 봉사하는 경우, 이론과 그 사실들은 하나의 쌍이 되어 좋다고 여겨진다. 아닌 경우 실험은 새로운 이론 만들기의 기반이 된다. 뉴턴역학이 틀렸다고 하지만 뉴턴역학의 조건 하에서는 지금도 뉴턴의 실험 사실들이 반복 재현 가능하다. 역사적 사실들로서 과학적 사실들은 결코 의사결정의 공적 기반이 될 수 없는 꿈과 같은 주관적 경험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합리성, 곧 17세기 과학혁명 이후 확실성의 시대를 지배했던 합리성 개념에 구속된 '객관성'이라는 개념은 특정 철학 전통에 속한 것이지 결코 일상적 의미에서 '객관성'을 뜻하지 않는다. 반복 재현 가능한 측정량을 다루는 과학자들의 무의식 속에는 소박한 객관성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과학과 관련된 많은 그릇된 논쟁은 역사의 무지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한의학은 과학인가? 이러한 질문에 과학의 조건으로서 기하학적 이성 따위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과학의 당양성 역사에 대한 무지를 보여준다. 한의학은 측정량 등과 관련해 소박한 객관성을 충분히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의 과학에 속할 수 없다. 하지만 물질 개념이 태동후 질량에 대응한다고 여겨지는 측정량을 얻어낸 과정은 오랜 역사다. 한의학은 과학 이전의 단계 혹은 'proto-science'로 보면 된다. 과학적인 것과 신화적인 것의 줄타기에 한의학을 던지는 것은 한의학을 죽이는 행위이다. 그 대신 과학 이전의 단계에서 과학적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조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다음은? 내가 알 바가 아니다.

참고문헌

Gayon, J.(2003), "From Darwin to Today in Evolutionary Biology" in Hodge, J. & Radick, G.(Eds.): The Cambridge Companion to Darwin, Cambridge University.

Helmholtz, H.(1869), "The Aim and Progress of Physical Science" in Helmholtz, H.(1892): Popular Lectures on Scientific Subjects, Longmans, Green, & Co.

Krüger, L., Daston, L. & Morgan, M.S.(Eds)(1987), The Probabilistic Revolution: Vol.2 Ideas in Sciences, MIT.

Sibum, H.O(2004), "What Kind of Science Is Experimental Physics?", Science, 1 October.
by 취어생 | 2005/10/21 12:04 | 트랙백


<< 이전 페이지 |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