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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1일
원문: P. 프랑크 대담 Part I: Mach, Boltzmann, Vienna
필립 프랑크(Philipp Frank, 1884-1966), 그는 이론물리학자로서 볼츠만(L. Boltzmann)밑에서 공부했으며, 인과(causality) 연구로 유명하다. 프랑크는 과학자지만 오히려 과학 철학자에 더 가깝다. 올리는 글은 토마스 쿤이 1962년 프랑크와 인터뷰한 내용으로서 다음 책에 실린 것을 내가 번역한 것이다. Blackmore, J., Itagaki, R. & Tanaka, S.(Eds): Ernest Mach's Vienna Circle 1895-1930 Or Phenomenalism as Philosophy of Science, Kluwer Academic Publisher 2001. 이 대담에서 당시 비엔나의 분위기 및 노학자의 마흐, 볼츠만, 아인슈타인에 대한 회상을 엿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글의 압권은 마흐를 철학의 현상학자로 분류하는 어설픈 쿤의 질문에 대한 프랑크의 일침이다. 이 대담에서 특히 인과는 우연(chance)에 반대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이 대담에서 인과의 부정이 원인 부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의견은 괄호로 처리하였다. Part I 쿤: 언제부터 당신이 본격적으로 비엔나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는지요? 프랑크: 내 생각으로는 1904년 혹은 그 때에서 약간 더하거나 빼면 되는 시점입니다. 1907년에 비엔나를 졸업했을 거야. 내가 4년을 공부했으니까 정확한 시점은 1903년이군. 나는 1907년에 졸업했으니까. 나는 정규 박사학위 과정을 이수했었지. 물론 그 때 비엔나를 지배한 인물은 1906년에 죽은 볼츠만이에요. 당신도 알다시피 마흐는 그 때 벌써 은퇴했지. 내가 학생일 때 마흐는 가르치지 않았어. 그는 일찍 은퇴했지. 63세면 그리 늙지도 않았는데 일찍 은퇴했지. 이 상황을 약간 설명할 필요가 있군. 나는 볼츠만 밑에서 공부했어요. 볼츠만과 양자 이론에 관해 흥미로운 것은 그가 벌써 상태 위상 공간(state phase space)의 확률에 관한 근본 개념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는 오래 전부터 위상 공간이 양자화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지. 그래야지만 위상 공간의 방(cells)들의 크기가 유한할 수 있지. 아니라면 확률은 0 혹은 무한대가 되니까. 어쨌든 확률의 전체 아이디어는 위상 공간에 유한개의 방들만이 있다는 거야. 당신도 알다시피, 볼츠만은 원자론의 추종자죠. 그 스스로 말하길, “아마도 시간의 원자(atoms of time) 또한 있다.” 위상 공간은 물론 시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에너지 곱하기 시간이니까.” 그리고 모든 위대한 과학자들이 말했듯이, “아마도 시간의 원자 역시 있을 거야.” 쿤: 그런 사실은 몰랐네요.... 프랑크: 나는 비엔나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물리학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내가 비엔나 출신이고, 나는 다른 어느 곳에서 공부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과학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비엔나에서 공부를 한다고 여겨진 시대였지. 잠시 다른 곳에 머무르는 것을 제외한다면, 나는 비엔나 이외에서 공부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나는 주로 볼츠만과 연구를 했지. 그러나 당신도 알듯이, 엑스너(Exner)의 강의 하나는 양자 이론의 기초와 연결된답니다. 나는 그것이 물리학에서 통계의 지위에 관한 그의 강의로 기억해요. 그 강의에서 그는 유명한 말을 했지. 그는 물리학의 기본은 통계적일지 모른다고 말했어. 그리고 모든 통계의 법칙이 동력학의 법칙에서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지.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통계학은 단지 ‘평균치만 준다’는 아이디어니까. 근본 법칙들은 뉴턴의 법칙들이죠. 그러나 벌써 이게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고 말한 인물이 엑스너야. 근본 법칙들은 통계적일 수도 있다 이거지. 나는 이 생각이 슈뢰딩거에게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고 여긴답니다. 쿤: 엑스너 강의는 직접 읽지는 못했고 슈뢰딩거의 논문을 통해 접한 적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당신이 아는 것 전부입니까? 아니면 엑스너의 진술이 슈뢰딩거 이후에 유명해진 겁니까? 프랑크: 아닙니다. 그것은 벌써 당시에 잘 알려졌어요. 그것은 나의 학부 시절부터 폭 넓게 토론되었거든. 비엔나의 모든 물리학자들은 과학철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여기서 과학철학은 ‘과학에 관한 철학적 고찰’을 뜻한다.) 통계 법칙의 지위와 같은 과학철학의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넓게 토론되었어요. 프란쯔 엑스너의 과학철학에 대한 관심과 출판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그가 주도해 나갔습니다. 실험 물리학자인 엑스너는 철학적 주제들을 이론 물리학자인 마흐와 볼츠만에게 넘겼지만, 볼츠만이 죽은 후 통계 법칙과 연관된 볼츠만의 관심을 살아남게 한 인물은 엑스너였다오. 그 당시 나는 엑스너의 주 분야가 전기 및 대기의 전기 연구라고 생각했지. 그 연구는 당시 이온(ion)과 전자 연구의 시작이지. 오 맞아, 이 연구의 기초가 통계적인지 아닌지가 크게 토론되었어요. 왜냐하면 모든 게 철학과 연관되었으니까. 쿤: 내가 이에 관해 좀 더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당신은 볼츠만을 잘 압니까? 프랑크: 물론, 잘 알지요. 쿤: 볼츠만이 플랑크의 양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까? 프랑크: 그래요, 알다시피 그것은 양자 이론의 예측이니까. 쿤: 그런데 볼츠만이 단적으로 그렇게 말했다는 말입니까? (성과물에만 과학자가 주로 집착한다는 쿤 자신의 입장을 스스로 옹호하기 위한 변칙 질문) 프랑크: 맞다니까, 그는 플랑크(Planck)의 양자에 대해 말했어요. 그는 단적으로 .... 쿤: 그게 큰 돌파구가 되리라는 느낌을 가진 사람이 비엔나에 있었나요? (갑자기 말을 끊으면서 주제를 돌리는 쿤) 프랑크: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오, 그래, 에렌페스트(Ehrenfest)가 그 느낌을 가졌지만, 그는 또 (양자에 대해) 의심했지. 쿤: 그가 그런 느낌을 벌써 가졌단 말입니까? 프랑크: 오, 그래 확실합니다. 에렌페스트는 항상 이상한 것을 쫓았지. 그는 주로 비엔나에 있지 않았어요. 그는 러시아에 살면서 틈틈이 비엔나를 방문했지.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는 사람들에게 미친 인간으로 여겨졌어요. 쿤: 하젠뇔(Hasennoehl)도 당신이 학생일 때 비엔나에 있었나요? 프랑크: 예, 그 때 나는 학생이었고, 그는 사강사(Privatdozent)였어요. 그는 본래 로렌츠(Lorentz)의 학생입니다. 그는 전자기학을 공부했고 적어도 어느 선까지는 상대성이론과 유사한 것을 연구했어요. 그러나 물론 더욱 로렌츠 스타일! 하젠뇔은 젊어서 죽었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죽었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그는 로렌츠 방식으로 해석된 아인슈타인의 질량과 에너지 등가성을 예측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실 하젠뇔은 꽤 흥미로운 사람이지만 특별한 천재는 아니야. 그가 플랑크에 대해 언급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일반적으로 그는 플랑크 스타일의 작업에 흥미를 가졌지. 하젠뇔은 한 때 제네바에서 에렌페스트의 형제와 친분을 가졌고, 비엔나에 온 에렌페스트가 하젠뇔에게 말했지. “내가 미치지 않았다고 나의 형제에게 말해다오. 네가 나의 형제에게 그렇게 말해 준다면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러나 하젠뇔은 이렇게 반박했지. “미안해, 그건 아무런 도움이 안 돼. 그 결과는 단지 너의 형제가 내가 미쳤다고 여기게 만들 뿐이야.” 쿤: 그런 일이 일어날 당시, 원자에 대한 회의론(scepticism)과 연관해 마흐의 영향력은 사라졌나요? (마흐의 원자에 대한 회의 혹은 의심과 철학의 회의론을 구분 못하는 쿤) 프랑크: 아니야, 사라지지 않았어요. 마흐와 볼츠만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흥밋거리는 항상 있었어요. 이 흥밋거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마흐와의 논쟁에서 실망한 볼츠만이 자살하게 되었다는 낭설은 단지 러시아 문학의 정치 쇼에 불과합니다. 실제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죠. 볼츠만은 철학적으로는 스스로 마흐의 계승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볼츠만은 한 번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너도 알다시피, 내가 모든 원자들이 그림일 뿐이라고 말해도, 이 말은 나에게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않아. 내 관심사는 그런 게 아니거든. 나는 원자들이 절대적이라고 요청하지 않아. 이런 나의 태도는 마흐가 말한 경제적 서술(economic description)도 아니야. 어쩌면 원자들이 경제적 서술일지도 모르지. 이것 역시 나에게 별 상처를 주지 않아. 반형이상학적 관점의 물리학자에게 이런 거는 대수로운 게 아니야.” (나의 첨언: 여기서 형이상학은 단순 검증 및 반증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과학 작업에 불필요한 신(God)과 같은 그런 개념이다.) 루드비히 볼츠만은 단지 좀 더 원자에 대해 철학적일 뿐입니다. 그는 당신보고 원자를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여기에 마흐와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견해는 없습니다. 서로의 견해 차이는 (과학이 아니라) 단지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 영역에서만 나타납니다. 예, 그 차이는 거기에만 존재해요.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비엔나 물리학자들 모두가 마흐와 볼츠만 양자의 후계자입니다. 마흐 때문에 볼츠만의 원자론에 반감을 가진 경우는 없었습니다. 나 또한 마흐가 볼츠만에게 반감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상황은 (세속적으로 알려진) 그런 게 아닙니다. 그리고 서로의 견해 차이는 나의 경우 별 역할도 없었어요. 물론 나는 전체 문제에 관심을 가졌지만, 마흐 이론 때문에 볼츠만의 이론을 포기해야 한다는 따위의 생각은 아예 들지도 않았습니다. 쿤: 그러나 어네스트 마흐는 열역학의 현상학적 해석을 믿고 통계적 해석을 전적으로 반대한 사람입니다. (어설픈 쿤의 사고 폭이 드러나는 순간! 통계는 열역학과 열운동학 둘 다에 쓰이는 방법론이기 때문에, 통계를 가지고 마흐와 볼츠만을 대조시키는 것은 조악함. 이는 과학의 역사를 기록의 변천 과정으로만 알 뿐이지 실제 개념들의 내용 변천과 적용 방식에 대한 쿤의 무지를 보여주는 대목임.) 프랑크: 아니라니까요, 나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어요. 마흐는 절대 통계적 해석의 반대자가 아닙니다. 단지 통계적 방법이 원자 실재 가정에 좌우 될 때 반대하는 겁니다. 마흐의 이러한 관점은 당신의 미국 철학자 스탈로(J.B. Stallo)의 소개에 잘 나와 있습니다. 마흐는 원자 가설을 정당화하기 위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믿습니다, 물론 여기서 증거는 실험적 증거지요. 마흐가 원자를 철학적으로 부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스탈로도 그랬던 것이요. 나는 마흐의 원래 논증은 이렇다고 생각해요. 원자들이 역학적 대상이라면, 당신은 실례로 스펙트럼선과 같은 복잡한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겁니다. 대답은 당시에 알려지지 않았고, 그래서 새로운 접근법이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마흐의 이러한 접근법은 어느 정도 슈뢰딩거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요. 왜냐하면 슈뢰딩거의 원자 개념은 결코 역학적 원자론의 그것이 아니니까. 쿤: 아니에요. (공약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쿤으로서는 프랑크의 말을 인정할 수 없다. 물론 후기 쿤은 자신의 패러다임 전환에 의한 과학 발달의 구조가 강한 사회구성주의 프로그램에 도용되는 것을 반대하면서 객관성, 진리 및 이론 평가를 언급한다. 최근 이것을 가지고 다시 쿤을 팔아먹는 인간들이 많은데, 이들은 먼저 공약 불가능성 논제가 쿤의 그런 언급과 논리적으로 양립 가능한지부터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여기에 동의하는 전문 연구는 거의 없다. 또 후기 쿤의 그런 언급은 대게 언급으로만 끝나고 있다. 이는 자신의 관점 때문에 과학이 사회구성주의자의 밥그릇이 되는 현실에 대한 과학자의 본능적 방어 심리의 표출일 뿐이다.) 프랑크: 그것은 실체라거나 쪼개질 수 없는 입자로서 그런 원자론이 아니에요. 당신도 알다시피, 이론은 지속적으로 진화합니다. 그러나 물론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현상학적 이론을 믿으면서 원자론으로부터 일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가 진짜 생산적인 물리학자들 사이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이가 철학적 의미에서 어느 정도 마흐의 추종자들이었습니다. 젊은 아인슈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구요. 그는 마흐의 추종자였습니다. 당신은 이런 점을 하이젠베르크 그리고 아마도 보어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이런 것이 중심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어떤 이들은 물론 마흐의 인식론을 가지고 과학 발달의 불연속성을 해석합니다. 그러나 철학적 의미에서 연속과 불연속이 전혀 철학적 담론의 주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는 마흐에게 그들은 실제로는 마흐의 적들입니다. (결국 과학의 발달은 다양성 증가의 역사임을 과학의 역사 의존성을 통해 보일 수 있다는 나의 신념은 프랑크의 대담에 의해 지원받을 있는 듯하다. 나의 신념을 이 땅에서 신화가 된 쿤에 국한하여 그를 비판하면서 보여주려고 하다가 나타난 책이 초라한 과학철학: 과학의 역사 의존성이다. 과학의 다양성은 과학, 권위 그리고 사회라는 새 책에서 기존의 과학철학에서 해방되어 설득력 있게 표출되기를 희망한다.) # by 취어생 | 2005/10/21 12:11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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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두뇌를 이해하고 두뇌가 손의 움직임을 느낀다. 그 때 과학이 시작된다.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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