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1일
강정구 사건에 대한 대학의 공식입장 비판!
원문: 강정구 사건에 대한 대학의 공식입장 비판!

아래는 요새 신문과 방송에 많이 회자되는 강정구 교수 사건에 대한 동국대학교의 공식 입장입니다. 사실은 대학보다는 대학의 위에 군림하는 재단의 공식입장입니다. 개인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개인적으로 강정구 교수의 발언과 이를 둘러싼 사회 잡음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저는 친미, 반미 혹은 역사 해석의 진위 가리기가 아니라 법제도를 둘러싼 하나의 갈등 혹은 딜레마로 규정하고 싶습니다.

우리 헌법에는 분명히 의사표현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물론 의사표현의 자유는 무작위로 작동하지 않고 적절한 제한을 받습니다. 얼마만큼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가를 명시하는 법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 따라 요동칩니다.

과거 독재시절 의사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강력한 무기는 국가보안법이었습니다. 지금은 과거 시절과 다를 뿐더러, 그 사이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지는 않았어도 상당히 수정된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강교수의 발언이 책이나 논문이 아니라 방송에 떴다는 이유 하나로 구속여부가 결정될 만큼 현행 국가보안법이 헌법에 명시된 개인의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한할만한 위치를 갖고 있습니까?

이 질문부터 면밀히 따져야 합니다. 적어도 70년대가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서 과거사에 대한 여러 해석 중 하나를 강력히 표출했다는 이유로 강교수를 구속하겠다는 것은 결국 일제 강점기 및 남북전쟁과 관련해 미국에 불리한 해석을 가하는 자는 무조건 구속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강교수의 구속은 개인적으로 역사적 후퇴로 봅니다. 국가보안법은 분명히 독재시대의 유산이며, 그 독재는 친미, 반북 그리고 반공산주의의 미명 아래 이뤄졌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강교수의 의견은 그 진위를 떠나 하나의 의견일 뿐입니다. 그리고 친미가 대외적으로 선전을 할 권리가 있다면, 그도 반대되는 입장에서 그러한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그를 구속할만큼 지금도 그렇게 강력한 법이라면, 지금 이 사건을 놓고 현법에 명시된 의사표현의 자유와 현행 국가보안법의 우선순위 및 둘의 관계를 명확히 따져야 합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강교수가 구속되면 힘 있는 집단은 헌법소원을 내십시요. 곧 그 동안 여러 차례 약화된 국가보안법이 이 정도까지 의사표현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가? 과연 독재가 지나간 이 시대에 의사표현의 자유와 체제 보장과 관련된 국가보안법의 여러 조항들이 모순 없이 양립가능한가? 이러한 문제들이 공론화되게끔 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아래 동국대, 엄밀히 말하면 동국대 불교 재단의 입장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입니다.

첫째, 동국대 학생들을 친북반미 사상으로 모는 집단은 결코 이 나라 사람들 전체가 아닐 뿐더러, 그런 집단이 그렇게 모는 것은 일종의 협박입니다. 그런데 공식입장의 논조는 일종의 용서를 비는 것으로서 협박에 굴복하겠다는 어투입니다. 이것은 사회의 참다운 대학 기능을 재단 스스로가 포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대학의 명성에 득이 되는 입장이 아니라 해가 되거나 논쟁을 불러일으킬 입장은 대학 울타리에 가두려는 취지를 재단은 언명합니다. 이것은 사회의 변화에 대학은 개입하지 말고 오로지 국가정책 및 권력집단의 뜻에 순응하겠다는 결의의 일종입니다. 이것이 대학이 걸어야 할 실천이라면, 동국대 재단은 자신들의 대학이 대학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셋째, 학생들을 사랑한다는 취지를 그들의 취업 문제와 관련시키고 있습니다. 과연 이번 강교수 사건이 동국대 학생들 다수의 취업에 불이익이 된다는 결정적 증거가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없습니다. 지금은 독재시기가 아닙니다. 사학의 역할이 오로지 학생들 취업률을 늘리는 것이라면, 대한민국에는 참다운 사학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동국대 공식입장은 결국 다수의 학생들에게 여러 의견을 표출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스스로 참다운 사학 전통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넷째, 부처가 언제 갈등 없이 조용한 것이 항상 대승의 정신이라고 밝혔습니까? 부처가 언제 갈등 상황을 적극적 중재하려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는 것이 대승의 참다운 정신이라고 했습니까? 사상적 편향과 편견을 경계하는 동체대비(同體大悲)가 부처의 뜻이라면, 이번 사건은 그런 편견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기에 강교수 구속처리 방침에 저항할 권리가 불교에서도 나옵니다. 대승 불교의 전통에서 이번 동국대 재단의 입장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증거를 누가 밝히면, 이 글에 대한 사과문을 올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동국대 소속 동료교수들에게 질타를 가합니다. 다수가 먹고 살기 위해 재단에 충성하거나 침묵하는 것은 잘 압니다. 그리고 동국대 교수들 모두가 강정구 교수의 입장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압니다. 하지만, 방송에서 강 교수의 발언이 지나친 선동성을 가졌든 말든, 그 발언에 때문에 그가 구속을 당한다는 것은 이 땅의 지식인들의 의사표현이 억압당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침묵하는 것은 이념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항상 갈등이 있을 때 마다 기회주의자가 되는 이 땅의 지식인들의 본색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약 아래 공식 입장이 대학 재단이 아니라 교수협의회를 거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이 사건은 그냥 친미, 반미 종류의 이념 갈등이 아닙니다. 그러한 갈등이야 어느 사회든 있습니다. 이 사건은 그러한 갈등 구도가 얼마만큼 개인의 의사표현 자유을 억합할 영향력을 갖는지, 현행법의 테두리가 정말 그러한 법적 영향력을 갖는지 그리고 그러한 법적 영향력이 현 시대적 상황 속에서 헌법과 양립 가능한지와 맞물려 접근해야 합니다. 이 사건을 친미냐 반미냐로만 몰고 가는 찌라시들 싸움에 맞장구치는 아래와 같은 역시 찌라시 글이 대학의 공식입장이 된다는 것 자체가 사회 속에서 기능하는 우리 대학에 부정적 평가를 내리도록 만듭니다.

"동국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먼저 우리 대학을 사랑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하여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대학은 일제시대에 두 번의 폐교 사태를 비롯한 많은 위기를 겪으면서도 교육의 사명을 다해왔습니다. 마침 내년은 건학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여서 큰 희망과 기쁜 마음으로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뜻밖에도 강정구 교수의 발언이 정치적, 사회적 쟁점으로 비화하면서 학교는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학교는 수많은 개인과 단체로부터 끊임없이 질책과 항의를 받아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동국대 교직원, 동문 등 대학 전체가 받은 피해는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동국대생 모두를 ‘친북반미’ 사상으로 몰아 사회 진출을 막아버리겠다거나 학생들을 결코 보내지 않겠다거나 하는 가혹한 항의가 계속되는 상황입니다.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좋은 일자리를 마련하여 미래를 힘차게 열어가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 될 우리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과 앞이 캄캄한 암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우리 대학은 사상적 편향과 편견을 경계하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불교 정신을 바탕으로, 타인을 섬기고 존중하며 아울러 세계를 넓게, 바르게 보고 실천하는 삶을 그 무엇보다도 존중하는 학풍을 이루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은 비록 화려하지는 않으나 학술, 예술, 정치, 경제 등 많은 분야에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였고 그들의 활동을 통해 한국인의 문화적 삶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자부심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은 자유로운 진리 추구가 보호되는 곳입니다. 그러나 강 교수 등의 발언은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서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우리 교무위원 일동은 그 점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향후 당국의 법적인 처리 결과에 따른 조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대학으로서 부디 바라는 것은, 대학을 보호할 힘을 가진 각계각층은 대승적 사고를 통해 지나친 갈등을 자제해 달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대학의 구성원들 역시 화합과 평화를 존중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갈등을 극복하는 지혜와 자제력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동국 가족 및 학부모 여러분. 우리 대학은 학생들을 바르게 인도하고, 바르게 가르칠 것입니다. 순수하고 건강한 정신으로 성장하는 우리의 소중한 학생들만은 기성세대의 갈등 때문에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심려를 끼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모든 방법을 강구하고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입니다. 끝으로 강 교수 등의 발언으로 말미암아 혼란을 겪으셨을 동국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다시 한 번 송구한 말씀을 드리면서 100년 전통의 사학이 교육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부디 애정 어린 관심과 지원을 보내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동국대학교는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세계의 대학으로 우뚝 설 것입니다. 2005. 10. 17. 동국대학교 교무위원 일동"
by 취어생 | 2005/10/21 13:41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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