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1일
약장수와 미친 말!
원문: 약장수와 미친 말! by 착한왕
이 중국산 김치 기생충알 사건 기사를 보니 불현듯 과거 일이 생각난다. 국민학교, 그러니까 지금의 초등학교 4학년 때인 걸로 기억한다. 기억력은 나빠도 그 때 어느 날 있었던 중첩된 두 사건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특히 미친 말 사건 때문이다.

이 글을 본 사람들 중에는 도대체 어디에 살았기에 미친 말을 다 봤는지 의아할 것 같아서, 당시 서울 변두리 상황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하다. 나는 왠만한 서울 변두리에서는 다 살아봤다. 당시 나의 활동무대는 정말 넓었다. 봉천동 달동네에서 시작하여 낙성대 산을 넘어 지금의 금천구에 해당하는 시흥과 독산동이 주 활동 무대였다. 나중에 이사를 간 후 독산동 코카콜라를 지나 신대방동 쪽으로 가는 방향에 자리를 잡은 강서중학교를 다녔다.

그 당시만 해도 독산동은 거의 집이 없었다. 내가 만원 버스에서 고등학교 누나들한테 당하는 성희롱(?)을 무척 싫어했기 때문에 거의 3km를 자주 걸어다녔다. 독산동 일대의 산에는 나무가 별로 없었고, 그 지역에서 내가 잡은 도마뱀 수자만 족히 100마리는 넘는다. 우리나라 도마뱀은 그 자태가 귀엽고 눈으로 봐도 독이 없다는 것이 식별된다. 도마뱀을 잡아 손가락을 입에 물려주면 그 촉감 또한 괜찮다. 이것이 내가 중 1때 독산동 상황이다. 정말 3km반경에 목욕탕이 외진데 딱 하나 있었고, 애들하고 바깥에서 여탕도 좀 훔쳐봤다.

내가 4학년 때는 독산동은 두 말할 것 없이 낙성대도 글자 그대로 황량한 지역이었다. 이 당시 봉천동에 밀어닥친 집짓기 바람이 서서히 낙성대와 낙성대를 지나 시흥 및 독산동으로 확장되어 가던 시기다. 그 덕에 사방에서 벽돌을 만드는 곳이 생겨났고, 특이한 것은 소가 아니라 말들이 주로 벽돌을 날랐다.

또 당시에는 약장수가 참 많았다. 차력술을 보여 준 후 아이 한명을 부른다. 알약을 먹인 후 싸게한 다음 회충을 보여주고, 아이의 배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사람들을 겁나게 만든다. 그리고 약을 판다. 사실 속임수다. 그 회충은 미리 준비한 것이거나, 아니면 약장수 답게 쉽게 회충에 심하게 감염된 아이를 고르를 수 있다. 그 때는 참 기생충 때문에 얼굴이 누렇게 뜬 애들이 많았고, 영양실조로 코흘리게도 많았다. 그 당시 약장수의 회충 보여주기 쇼가 속임수인지 진짜인지를 놓고 애들과 토론도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약을 먹었다고 그 자리에서 살아있는 회충이 나올리 만무하다. 그러나 그게 속임수라고 해도 당시 약장수들을 사기꾼이라고 평하고 싶지 않다. 그 알약을 팔기 위해 그들이 준비한 쇼, 이마빡으로 나무에 못박기, 배위로 오토바이 지나가기, 심지어 쇠꽁챙이를 팔둑에 꽃아 차끌기 등등을 고려하면, 그 정도 속임수도 사실 오늘날 이벤트에 가까운 것이다.

차력술과 함께하는 약장수 쇼는 참 많이 봤다. 어느 날 약장수 쇼를 보고 있는데 난리가 났다. 바로 말이 미친 것이다. 당시 벽돌을 나르던 말은 실제로는 주로 노새이거나 조랑말들이다. 하지만, 진짜 서부극에 나오는 그런 말이 한마리 있었다. 주인이 그런 말을 살 돈이 어디 있겠는가. 아마도 다 늙어서 헐값에 팔려온 말일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벽돌을 나르던 노새와 조랑말은 주로 숫놈들이었다. 그 미친 말은 덩치가 큰 만큼 물건도 컸다. 발기를 하면 정말 길다. 그러나 역시 동물의 세계는 비례의 엄격한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윤기 나는 말다운 말보다는 그 지역에서 제일 물건이 큰 놈은 꽤재재하게 생긴 작은 조랑말이었다.

요새야 책 읽고 공부하느라 애들이 시간이 없지만, 그 때는 참 하루가 길었다. 솔직히 초등학교 2학년 이후 읽은 소설책이 단 한권도 없다. 사방에 보이는 것이 책보다 더 재미있는데, 소설책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요새야 모텔이 즐비하지만 그 때는 아니다. 젊은 남녀들이 산에서 참 많이 했다. 나한테 발견되어 내가 던진 돌맹이에 맞은 커플도 있다. 지금 이 글을 본다면, 벌써 나이가 장년에 접어든 그 분들께 공식적으로 사과드린다.

아무튼, 약장수 쇼야 늘상 보던 것이고 말이 미친 것은 그 날 처음 봤다. 주인 아저씨가 말리다가 말 앞발에 채여 넘어졌다. 하지만, 말은 거친 행동 속에서도 주인을 밟지 않았다. 그리고 박차고 달려나갔다. 우리도 달렸다. 그 때는 지친다는 것이 뭔지 몰랐던 시절이다. 계속 달리다 보니, 이윽고 아까 말한 독산동에 도착했다. 독산동 여성회관이 있는 근처로 기억된다. 물론 당시에는 여성회관이 없었고,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지어진 것으로 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겼을지도 모른다.

모두들 그 때까지 말이 미친줄 알았다. 그러나 완전히 미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달리던 말이 갑자기 그 지역 벽돌 공장에 묶여 있는 암컷 조랑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서로 좀 비비는가 싶더니 그 서부극에 나오는 자태의 말이 암컷 조랑말에 올라탔다. 개들의 교미야 당시에는 사방에서 볼 수 있지만, 말들의 교미는 그 때 처음 봤다.

참 신기했다. 그토록 지랄발광을 떨던 그 말은 다시 얌전해졌고, 주인아저씨의 손에 순순히 끌려갔다. 벌써 가정의학백과사전의 임신과 출산 및 양육을 독파한 나로서는 반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수컷인데 내가 다 크면 혹시 저 말처럼 되는 것인가? 아직 몇몇 순진한 애들이 아기가 어디서 나오는지를 놓고 궁금해 했지만, 당시 산에서 교미를 하는 커플들도 본 나로서는 정말 고민스러운 문제였다.

미친 말, 알고보니 암컷의 발정에 미친 것이었다. 정말 일반 말들이 저렇게 미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놈은 그랬다. 내가 그 날 본 것은 시골에서 본 밤하늘의 은하수에 함축된 자연의 모습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회충에서 시작해서 미친 말까지, 이 모든 자연의 드라마는 은하수에서 느낀 공포감, 경외감 그리고 모종의 질서감과는 확연히 달랐다. 신기한 것도 신비감과는 별개였다. 회충에서 그 큰 말의 광란은 지금생각하면 나에게 일종의 해프닝으로 비춰졌다. 그리고 약장수들도 달리 보였다. 그들도 다 그 해프닝이라는 자연 속에 또 하나의 해프닝이라는 것을! 당시 그 약장수 아저씨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먹고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평소에 가장 역겨워하는 두 선전이 갑자기 떠오른다. 첫째는 맹도견이 나오는 선전이다. 그 선전에 나오는 엄숙한척 하는 목소리, 억지의 감성 자극이 싫다. 또 다른 선전은 "자연이 우리를 허락했어요"라는 멘트가 흘러나오는 선전이다. 컴퓨터 영상으로 처리된 가짜의 아름다운 자연 속의 아파트! 우끼지 마라. 너희들은 진짜 자연의 한 측면도 제대로 경험한 적이 없다. 너희들은 논에서 거머리가 무릎에 달라붙을 때 울 것이다. 나는 과거에는 때려잡았지만, 지금은 떼낸 후 살려줄 것이다. 자연의 사랑은 결코 감성 자극이 아니라 지구상의 실제 해프닝을 경험함으로써 완성된다.
by 취어생 | 2005/10/21 19:50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올빼미 at 2005/10/22 00:38
추천 한 방!
명박옹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이군요. ㅋ
Commented by 차차 at 2005/10/22 01:40
자연의 사랑은 결코 감성 자극이 아니라 지구상의 실제 해프닝을 경험함으로써 완성된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꼭 자연이 아니더라도 인간사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인듯 싶네요.
경험과 단순한 상념의 차이는 지구와 별의 거리만큼이나 크게 차이가 나거든요... ^^
Commented by 기불이 at 2005/10/22 04:36
기생충약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옛날 약은 먹으면 회충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숫자도 세고 그랬다던가. 요새 약은, 기생충이 소화액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보호막을 제거해서 기냥 소화시켜버립니다만...

옛날에는 참 많이들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었죠. 별별 일도 다 있었고. 안죽고 이날 이때까지 살아온 것에 대해 정말 가끔 전율을 느낍니다.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0/22 05:33
공적 영역에서의 감상주의 폭파! 할 수 있다면 해보고 싶은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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