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25일
계몽?
결국 나의 불만은 많은 윤리주의자들과 인문주의자들이 과학자를 계몽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데에 있다. 나는 그 반대의 경우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정신병리적인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계몽의식은 구조적으로 서열화라는 모순을 낳는다.

과학은 윤리적으로 불완전하다.
윤리학은 윤리적으로 과학보다 완전하다.
따라서 윤리학은 과학을 계몽할 수 있다.


누가 누구에게서 어떻게 윤리적 완전성을 주장할 수 있는가. 누가 누구를 계몽할 수 있는가? 실증주의를 기반으로 한 계몽이 실패했다면, 윤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계몽 또한 반드시 실패한다.

해답은 다양성과 전통의 회복에 있다. 이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가 당신들과 나 사이의 대화의 벽으로 작용한다.
by 취어생 | 2005/11/25 03:28 | 트랙백 | 덧글(34)
Commented by browne at 2005/11/29 10:10
맞습니다. 인문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착각 중의 하나지요..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1/29 12:43
브라운/ 착각을 해도 좋습니다. 대화만 가능하다면.
Commented by 카이첼 at 2005/11/29 14:00
유전자 조작 곡물에 대한 저명한 과학자의 입장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그로 인해 발생할 문제-가령 슈처 잡초-에 대해 '그렇다면 과학이 해결할 것이다.' 라고 너무도 간단히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그러한 조작 식물들이 거대 자본에 의해 조종됨으로서 일어날 문제는-가령, 녹색 혁명은 얼마나 기만적이었습니까-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과학의 중추에 있는 이들에게서조차 이러한 입장들이 끊이지 않는 이상 윤리를 고민하는 이들이 과학의 계속해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은 정당할 것입니다...
Commented by 카이첼 at 2005/11/29 14:03
물론 취어생 님의 이야기가 나온 맥락을 이해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윤리가 과학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필연성까지도 함께 부정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윤리를 이야기하지 않는 영역'이니까요.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1/29 14:10
"과학은 본질적으로 '윤리를 이야기하지 않는 영역'이니까요" 라는 말 책임지실 수 있습니까.
Commented by 카이첼 at 2005/11/29 15:18
있습니다.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1/29 21:05
책임져 보세요. 그럼. ㅋ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1/29 21:18
참고로 뉴턴의 고전역학이 횡행하던 시절에 이미 칸트가 역학적 세계관 속에서 윤리학을 논했고, 많은 과학자들이 이를 받아들이거나 영향받았으며, 생물학의 등장 이후에 이런 분위기는 가속되어 왔습니다. 과학자들은 윤리문제에 민감했고 사회적으로 이를 알리기 위해 부정적으로든 긍정적으로든 노력해왔습니다. 과학적 윤리학의 건설이 논의되었고, 진화윤리학이 등장했습니다.

만약 이를 과학자의 활동이라는 제 구분식으로 나누고자 한다면 과학활동의 본질적 양식을 규명해주셔야 할 겁니다. 이를 규명한다해도 문제가 생깁니다. 본질적 양식에서 윤리를 이야기하는 분야는 인문학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학도, 예술도, 과학도, 어느 무엇도 본질적으로 윤리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를 놓고 볼때 오히려 과학은 더 적극적으로 윤리를 이야기해왔습니다. 17세기는 물론이고 19세기에도 과학자들은 계속해서 윤리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지속해 왔습니다.
Commented by 카이첼 at 2005/11/29 21:47
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지금 논하시고 있는게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당연히 개개의 과학자는 얼마든지 윤리를 논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의견은 전문적으로 윤리를 논하는 이들의 의견보다 훨씬 뛰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대체 왜 과학이라는 것입니까? 과학은 필연성의 영역을 논할 뿐입니다. 윤리는 필연성을 논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욕망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사태는 악한 것이지만 가능한 것입니다. 흔한 비유로 과학은 그저 도구입니다.
Commented by 카이첼 at 2005/11/29 21:48
칸트를 말하셨는데, 그 칸트가 윤리를 자신의 비판서 가운데 어디에 넣어 논했는지 아십니까? ㅋ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1/29 22:28
ㅋ 말하고 보니 말도 안돼는 이야기를 한듯. 칸트는 여기저기서만 접해서 잘 모름. 최근엔 생물학과 관련해서 목적론 비판을 조금 보는 중입니다. ^^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윤리를 논한게 아니었던가보죠? 으음..테스트 당하는 기분이군. ㅋㅋ

질문하나 합시다. 본질적으로 윤리를 논하는 분야는 그럼 윤리가 말해줄 게 없게 되는 것 맞습니까? 과학이 윤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윤리가 과학에 뭔가 말을 해야한다는 논리대로라면 말입니다.

참고로 님이 드신 이유가 맘에 안든다는 거지 윤리가 과학에 뭐라고 하던 상관 안합니다. 제어론에 빠져 착각만 하지 않는다면.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1/29 22:31
비슷한 예로 과학이 도구라면 윤리는 뭡니까?
Commented by 카이첼 at 2005/11/29 22:34
맞습니다. 윤리는 실천이성에서 논했죠. 그럼 왜 윤리는 순수이성이 아니라 실천이성일까요. 그것은 윤리란 안티노미에 직면해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윤리란 과학이 다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윤리와 과학은 언제나 상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올바른 윤리는 정확한 정보에 기초해야 하고 정확한 정보는 과학에 기초해야 합니다. 또한 과학의 올바른 사용은 윤리적 고려에 언제나 함께해야 합니다.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1/29 22:35
국민윤리 시간으로 돌아간 착각이 드는군. 근데 칸트 이야기했던 부분이 자꾸 걸리는 데 말이죠. 앞으로 여기 오는 사람들 중에 DNA 구조 못그리는 사람은 생물학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해버릴까 생각중입니다.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Commented by 카이첼 at 2005/11/29 22:35
윤리는 과학이라는 도구의 올바른 사용법을 논하는 것입니다. 이 올바른이란 과학이라는 도구, 예시해서 칼이 강도질에 사용되는 것보다 옳다는 판단을 하는 부분입니다.
Commented by 카이첼 at 2005/11/29 22:36
제가 칸트를 말했습니까? 칸트를 말한 것은 취어생 님입니다. 불쾌하군요.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1/29 22:36
그럼 결국 같은 말로 돌아오지 않습니까. 내가 언제 윤리가 과학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했습니까.
Commented by 카이첼 at 2005/11/29 22:36
위에 강도질에 사용되는 것보다를 강도질에 사용되는 것보다 요리에 사용되는 것이 옳다는 으로 바꿔 읽어 주십시오.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1/29 22:37
"칸트를 말하셨는데, 그 칸트가 윤리를 자신의 비판서 가운데 어디에 넣어 논했는지 아십니까? ㅋ " 참으로 유쾌한 문장입니다.
Commented by 카이첼 at 2005/11/29 22:38
책임져 보세요. 그럼 ㅋ 또한 대단히 유쾌하시군요.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1/29 22:39
그런데 그 도구가 도구사용자와 동일한 레벨이라면? 님의 발언은 진부한 윤리-과학/ 판단-도구 의 이분법이군요. 정말 그렇습니까? 한번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윤리는 과학이 제공해 주지 않는 정보를 선험적으로 얻는답니까?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1/29 22:39
서로 한번씩. 쌤쌤. 맘에서 지우고 갑시다. ^^
Commented by 카이첼 at 2005/11/29 22:42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위의 질문은 진부하지 않습니까? '중력은 물체를 끌어당긴다'는 필연성의 영역에서 무슨 선악을 논하라는 겁니까?
Commented by 카이첼 at 2005/11/29 22:43
저는 취어생님의 블로그에 소개된 것처럼 과학과 철학의 진지한 상보관계를 논하고 또한 그에 따른 발전적인 관계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의를 갖춰 달았던 의견에 다짜고짜 불쾌한 경멸조의 말이라니, 솔직히 많이 불쾌했습니다.
Commented by 카이첼 at 2005/11/29 22:45
당장 이 포스팅에 올라와 있던 '다양성'이란 대체 무엇을 위한 단어였던 것입니까?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1/29 22:45

"과학이 도구고 윤리가 이 도구의 사용법을 판단한다"라고 말한 사람은 제가 아니라 카이첼님입니다. 저는 과학을 그런 도구의 영역으로 끌어 내릴 경우 윤리도 그 판단의 지위를 박탈당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말한 겁니다.

지금 무슨 사실-가치 무어의 "자연주의 오류" 이런거 말하는 시간 아닙니다. 그렇다고 둘이 잘해보자 이런것도 아닙니다. 제가 본글에서 말한 내용에는 님이 반박한 우려가 들어갈 필요 없습니다. 그냥 서로가 서로를 제어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제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입니다. 그게 아예 말도 붙이지 말라는 내용으로 읽힙니까?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1/29 22:47
불쾌하실 필요 없죠. 그냥 서로 직설적으로 의견 교환하는게 편합니다. 뭐 누구는 이런 걸 싫어할지도 모르겠으나. 이만 피디수첩 보러 갑니다. ^^ 악의같은 건 잡아 먹었으니 아무때나 와서 독설을 날려주시압~~ ^^//
Commented by 카이첼 at 2005/11/29 22:48
'취어생님의 말이 나온 맥락을 이해한다'고 했던 제 글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으로 이해하셨습니까?
Commented by GE at 2005/12/01 19:20
정말 속이 시원할 정도로 명쾌하군요.
저도 황우석 사태를 보면서 속에서 뭔가 치밀어오르는 게 있었는데, 취어생님 글을 보니 이제서야 그게 뭔지 알것 같습니다..
자주 오겠습니다 ^^
Commented by GE at 2005/12/01 19:25
생각난 김에 몇말씀 드리자면..
결국 인문주의자나 윤리주의자들의 "자기들만의 컨텐츠 부족" 이 원인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자연과학이나 공학이 만들어내는 이슈에 편승하지 않고서는 자기들만의 독자적인 논의대상을 개척할 여지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에도 취어생님 말씀처럼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였으니 근거가 없지 않느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최근 십년 정도에 들어 그 경향이 더욱 강해진 느낌이라고 할까요?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2/01 19:37
GE/ 위에서 괜히 이야기했다가 무시당한 칸트부터 현재의 인문학자들까지 모두 과학과 공학의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건 어떤 학문지식체계의 우월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 현실세계의 일부이며 철학과 윤리학등의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모든 범주를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학에 민감하지 않은 철학자는 철학자가 아닙니다. 여기서 할말은 아니나, 칸트가 대한민국에 수입되면 그가 과학에 대해 고민한 부분은 쏙 빠지고 윤리학만이 강조됩니다. 저도 주워듣거나 이차문헌을 통해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지만 칸트는 지리학과 천문학을 강의했던 사람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17세기 이후 과학에서 자유로웠던 대가급 철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17세기 이후 철학적 사고를 하지 않았던 대가급 과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과학이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흡수되고 거대화되고 국가과의 결탁이 강해지면서 과학과 철학은 마치 분리된 학문인것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등등등. 여기서 할말은 아니지만 그냥 푸념입니다. ^^ 이런 이야기들은 "과학과 철학"사이트로 와서 하시면 됩니다.
Commented by GE at 2005/12/01 19:38
철학자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과거 한때 철학이 모든 학문분과를 포함하던 때가 있었지만 그건 옛날 말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사유의 방식, 한계, 뭐 이런 문제들만이 철학의 이슈로 남아버렸죠. 그러니 백날 인식론으로 빠져서 허우적거리기만 하고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죠. 정작 의미있는 논의들은 의학이나 인지과학, 생명과학에서 던져주고 있는데 말입니다.

어쩌면, 과학-윤리 의 구도 대신에, 과학자-인문주의자 의 '사람' 구도가 더 명확하지 않나 합니다.
Commented by GE at 2005/12/01 19:43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만, 17세기 이후 철학적 사고를 하지 않았던 과학자들이 거의 없다는 말씀은 조금 과장 아닐까요?
물리학계의 거장들 - 예를 들자면, 양자역학의 선구자들 - 의 철학적 사고의 과정이 우리나라에서 너무 강조되고 유명한 에피소드들이라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그런 철학적 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과학자들이 오히려 소수 아닐까 합니다만. ^^
Commented by 취어생 at 2005/12/01 20:03
"대가급"이라는 조건절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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