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일상사
2008/08/07   티스토리에서 새롭게 시작합니다. [2]
2007/12/29   마르크스의 통찰
2007/12/18   입력후 출력대기 상태의 책들...
2008년 08월 07일
티스토리에서 새롭게 시작합니다.
이미 들르신 분들도 있지만, 티스토리에 새로운 블로그를 개설하고 나름 열심히 글을 쓰는 중입니다. 많이들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http://heterosis.tistory.com/  급진적 생물학자

그럼 이글루스에서의 추억을 남겨둔 채, 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by 취어생 | 2008/08/07 20:41 | 일상사 | 트랙백 | 덧글(2)
2007년 12월 29일
마르크스의 통찰


"그러나 데카르트에서 헤겔에 이르는, 그리고 홉스에서 포이어바흐에 이르는 오랜 기간에 걸쳐 철학자들을 움직여 온 것은 그들이 생각한 것처럼 순수사유의 힘만은 결코 아니었다. 그와는 반대였다. 실제로 그들을 앞으로 밀고간 것은 주로 위력 있고 더욱 더 급속하고 급격한 자연과학과 산업의 발전이었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II>강유원 옮김

그러나 이후 그들은 분명한 이 경험을 증오로 표출하기 시작했고 이후 계속되는 자연과학의 도전에 응대하지 못한채 눈을 감고 스스로를 우물안에 가두기 시작하였다.
by 취어생 | 2007/12/29 00:40 | 일상사 | 트랙백 | 덧글(0)
2007년 12월 18일
입력후 출력대기 상태의 책들...
고민이다. 좋은 책들의 번역은 분명 늘어나고 있고, 그런 양서들의 수명은 줄어들어가는 듯 하고 (자기계발 서적과 소설과 아이들 동화책과 수험서의 시장독점으로 인하여..), 따라서 양서가 눈에 보였을때 바로 낙아채는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필요할 텐데도 조금 뒤쳐져 있었다는 느낌이다.

뒤늦게 변명하자면 나는 인문학자가 아니며 나에겐 하루종일 책을 읽으며 쓸 의무와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 책읽기와 글쓰기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야간자율학습인 셈이다. "왜 과학자들은 책을 쓰지 않을까?". 불공평한 질문이다. 이는 마치 "왜 동양에선 과학이 발생하지 않았을까?"라는 철없는 질문과 유사하다. 어제 우리동네에 불이 났었다. 근데 왜 당신동네엔 불이 나지 않았을까? 답이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질문은 답이 있어야 정당성을 찾는다. 아니 적어도 답을 찾을 수 있는 합당성을 제시해줘야 한다. 이렇게 질문을 바꾸면 나는 매우 합당한 답변을 찾는다. "왜 인문학자들은 그리도 많은 책을 쓰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인문학자들이 그리도 많은 책을 쓰기에 과학자들이 책을 많이 쓰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게다. 왜 그럴까? 어려운 답은 없다. "그것(글쓰기)"이 "그들(인문학자)"의 학문(인문학)이 행하는 "실험"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의 실험처럼 그들은 책을 읽고 비교하고 논문을 쓰고 저서를 출판한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부족해 정치에 직접 동참하기도 한다. 과학자들에게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일은 인문학자들이 정치에 뛰어드는 일과 비슷하다. 정치에 뛰어든 학자들은 존경받는가?

여전히 나의 글쓰기는 삼천포에서 멀지 않다. 이런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머릿속을 채우고 싶다. 위의 내 모든 말은 이런 나의 욕망을 게으름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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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쉬베르거의 책을 왜 맨 마지막으로 두는가 하면, 내 삶이 끝날때까지 저 책을 읽을지 말지 끝까지 고민할 듯 보이기 때문이다. ㅎㅎ
by 취어생 | 2007/12/18 19:12 | 일상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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