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글루스

생명에 취한 사람

검색페이지 이동

사이드 메뉴

이글루스 블로그 정보

잘 죽는다는 것

앱으로 보기

본문 폰트 사이즈 조절

이글루스 블로그 컨텐츠

2003년 7월 7일 포항공대 소식지 (ms word)

잘 죽는다는 것

나라를 위해서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안중근
뇌세포를 위해서 몸을 바치는 것이 적혈구의 본분이다. –세포연합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사살, 1910년 3월 26일 사형집행.

인류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가족이나 친척 혹은 민족과 국가를 위해 죽어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왔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가 가지는 생물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왜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룬 모든 것들에겐 불가항력적인 희생이 기다리고 있어야만 할까? 2002년 노벨생리의학상에 대한 이야기는 이에 관한 아주 작은 실마리를 던진다.

이 화두를 풀기 위해 거창하게 세계사를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의 몸 속에도 세계사를 빛낸 위인들을 흉내 내는 세포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수십조 개의 세포들이 이루고 있는 하나의 공동체다. 우리는 날마다 수백만 개의 세포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고 또 재생시킨다.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없듯이 세포들의 수명도 유한하기 때문에 이러한 삶과 죽음의 반복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세포가 죽어주지 않으면 우리의 몸엔 녹이 슬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인류의 역사를 조망해 보면 역사란 사후에 태어날 후손들의 복지를 위해 할 일을 다하고 죽은 사람들이 이루어 낸 서사시라고 말할 수 있다.

2002년의 노벨 생리의학상은 바로 이러한 “죽음”을 연구한 세 명의 과학자들(시드니 브레너, 로버트 호비츠, 존 설스턴)에게 수여되었다. 그들은 유전학과 발생학의 중요한 모델 생물인 예쁜꼬마선충에서 ‘계획된 세포사멸 (Programmed Cell Death, PCD)’이라는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학명 Caenorhabditis elegans로 명명된 이 작은 선충류는 발생과정에서 1090개의 세포로 분열하며, 이 중 131개의 세포는 스스로 죽고 궁극적으로 959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성체가 된다. 복잡한 네트워크의 세포공동체 안에서 한 세포의 죽음이 무가치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죽은 세포는 죽지 않는 세포만큼 위험하다. 세포가 죽으면서 내어 놓는 유독물질들이 주변의 세포들에게까지 위험을 초래하고, 나아가서는 개체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위험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발생과정에서 빚어진 한 세포의 잘못된 죽음은 심장이나 뇌가 없는 태아를 만들 수도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결국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하다.

선충의 발생과정에서 보이는 예정된 세포사멸과정을 Apoptosis라고도 부른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apo(away from) + ptosis (falling)’, 즉 “낙엽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떨어져 나온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와는 다르게 백혈구들은 병원균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찾아내 주변의 세포들과 함께 마구잡이로 괴사시킨다. 이러한 경우 개체는 위에서 언급한 여러 위험들을 감수해야 한다. 이를 Necrosis라고 부르며 ‘make dead’ 즉 “죽게 하다” 라는 뜻이다. 세포가 조용히 죽어 갈 것인지, 혹은 급사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비교적 단순하다. 그 기준은 철저하게 경제적인데, 예를 들어 바이러스에 의해 세포가 감염되어 급하게 제거되어야 할 때엔 무작위 폭격이 이익이고, 반대로 발생과정과 같이 단 하나의 변화가 연쇄적인 작용을 유발하거나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고 매우 섬세한 조절이 필요한 경우엔 조용한 죽음이 제격이라는 식이다. 브레너를 비롯한 수상자들은 이러한 세포자살 과정에 caspase라는 단백질 분해효소가 중요하다는 것을 밝혔다. 우리가 잘 아는 소화과정에도 이러한 단백질 분해효소가 사용된다. 하지만 두 종류의 효소는 조절되는 방법이 아주 다르다. 후자의 경우 자르는 단백질의 인식부위가 매우 넓지만, 전자의 경우 매우 좁게 책정되어 있다. 이는 마치 옷을 자르는 데에는 청룡언월도와 재봉가위가 모두 가능하지만, 옷을 재단하는 것은 재봉가위만이 가능하다는 식이다. 세심한 재봉사의 손길처럼 세포자살은 정해진 순서와 방법을 따르는 일련의 정교한 과정이다.

이러한 세포의 예정된 죽음은 의학의 여러 분야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의 경우는 뇌세포가 너무 많이 죽어서 생기는 병이고, 암은 세포가 죽지 않고 지속적으로 분열하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사고사나 기생충 등에 의한 죽음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수명이 연장되면서 현대인류에게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두 질병이 바로 세포자살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다시 세포들의 복잡한 네트워크 속으로 돌아가보자.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세포자살의 메커니즘이 단세포생물인 대장균이나 효모균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포자살의 존재유무로 단세포생물과 다세포생물을 나눌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세포들의 연합은 사회를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경찰력이 필요한 것처럼 Apoptosis라는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 수억년전 서로 협동을 맹세한 세포들에게 효율적인 통제라는 새로운 진화적 압력이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압력으로 인해 예쁜꼬마선충으로부터 인류사회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네트워크의 기저에는 필연적인 제약이 존재하게 된다. 다세포생물에게 그것은 세포자살이라는 정교한 과정이고, 인류사회에 있어 그것은 치안유지를 위한 공권력이다.

영국의 저명한 동물학자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이기적인 유전자”의 저자인 리쳐드 도킨스는 유전자의 속성을 “이기적”인 것이라고 규정짓고, 우리를 “유전자라는 이기적인 분자를 보호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 되어 있는 움직이는 생존기계”라고 불렀다. 만일 그의 말처럼 유전자의 이기적인 면모가 실재하는 것이라면, 세포간의 협동은 평화가 아닌 휴전의 상태가 아닐까? 그래서 어떤 세포들은 휴전협정을 깨고 개체의 안위를 돌보지 않은 채 무한분열을 거듭하여 결국 암이라는 죽음의 병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는 전쟁으로 얼룩져 있고, 그래서 평화와 협동이란 그렇게도 어렵고 힘든 여정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비관론에 빠져있을 필요는 없다. 어려운 길을 걸어왔지만 인류도 세포연합처럼 협동의 방법들을 찾아왔으며, 세포들의 연합이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메커니즘을 고안해 낸 것처럼 인류도 살아남기 위해 결국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진화학적인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결국 “협동도 인간의 본능이다”. 세포들의 지혜로운 협상방법과 비교해 보았을 때 전쟁이나 테러는 썩 우아하거나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굳이 비유하자면 전쟁이나 테러는 암과 바이러스에 비교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생물학자는 수억 년에 걸쳐 다듬어져 온 세포연합의 지혜를 통해 인류의 희망을 본다.

포항공과대학교 분자바이러스학 실험실 박사과정 김 우재

포스트 공유하기

썸네일
취어생님의 글 구독하기
덧글 0 관련글(트랙백) 0
신고
맨 위로
앱으로 보기 배너 닫기

공유하기

주소복사

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할수있습니다.

http://heterosis.egloos.com/m/772970
닫기

팝업

모바일기기에서만 이용이 가능합니다.
운영체제가 안드로이드, ios인
모바일 기기에서 이용해주세요.

덧글 삭제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확인

게시글 신고하기

밸리 운영정책에 맞지 않는 글은 고객센터로
보내주세요.

신고사유


신고사유와 맞지 않을 경우 처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 위반/명예훼손 등은 고객센터를 통해 권리침해
신고해주세요.
고객센터 바로가기